[산업혁명의 흐름과 음악의 힘]
말러
그의 가곡은 거의 전부가 규모가 큰 관현악을 사용한다. 이것은 관현악이 노래에 종속되었다기보 다는 그 스스로 독자적인 면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래로서는 나타낼 수 없는 색채를 관현악이 보강한다는 점이 과거의 가곡과 다른 점이다.
그의 가곡은 대편성의 관현악을 사용하면서도 강렬한 음향보다는 대위법적 이며 실내악적인 느낌마저 들게 하는 깔끔한 면을 보인다. 여기에서 관현악은 반주로서의 기능이 아니라, 성악선율의 중요성과 동등하며 그 이상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관현악의 여러 색채와 다성부적 성부의 탈 종속성을 통하여 더욱 극대화된 것은 말러가 최초였다. 투명성에는 성부를 통해 색채를 교묘하게 드러나도록 짜 놓은 다성부적 처리방법도 이런 극적 효과에 기여하고 있다.
StraussR
<돈 키호테>, <가정교향곡>, <알프스 교향곡>은 사람들을 괴물스럽고 거 만스러운 느낌으로 압도하며 즐겁게 하는 요소가 적고 곡을 듣고 난 후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 그의 작품에는 기상천외하다고 할 만한 조바꿈 부분이 많아 마치 20세기의 무조성을 연상할 만한 부분들이 있다. 그의 음악극 살로메와 엘렉트라에 나오는 일부 화성은 비타협적인 불협화음들이 돌출하여 비록 1903년의 작품이지만 20세기 중반의 음악에 뒤지지 않을 만한 급진적 면모를 보이고 있다. 특히 교향시 틸 오일렌시피겔의 유쾌한 장난에서는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여러 부분에서 당시의 사조보다 훨씬 진보된 모습을 보인다.
슈톡하우젠
그룹이란 몇 개의 음열을 묶는 것을 의미하는데, 한 작품에서 서로 다른 그룹은 각기 다른 비율적 특징과 구조를 갖고 있으면서 서로 연관된다. 이것이 더욱 발전되어 완성된 작품이 <그루펜(Gruppen))이다. 그루펜이란 그룹(group)의 복수형으로 이 곡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세 그룹의 관현악단이 필 요하다. 따라서 세 명의 지휘자가 서로 다른 템포로 연주하여 하나의 작품을 연주한다.
1950년대 초 중심경향으로 등장한 총음렬주의 음악은 연주와 청취에 있어 많은 모순점을 안고 있다. 첫째로는 연주의 부정확한 불가능성과 청취능력의 한계를 들 수 있다. 서양의 전통적 악기는 음높이와 음길이, 그리고 음빛깔, 강 세를 구별하여 소리내는데 한계가 있다. 그럼으로 악기로 총음렬주의 음악에 서 요구하는 섬세한 강세, 리듬, 음색을 연주하기가 불가능했을 뿐 아니라, 청중도 이를 구분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약하게'를 mp.p. pp. ppp 등 12개의 다양한 강세를, 그리고 동시에 스타카토, 레가토 등으로 구성된 음색을 연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설령 이것이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음악은 인간의 지각 능력으로는 구분하기 힘든 범주였다. 작품을 어떤 규칙 에 의해서 작곡하고 연주하며 부분적으로 우연에 맡기는 음악을 알레아(Alea- torik/Alea)라고 하였다.
뉴올리언스 재즈는 노예에서 해방된 미국 흑인과 프랑스인의 혼혈인 크리올 (Criole)들에 의해 생겨났다.
1910년대에 래그타임과 함께 블루스와 폭스 트로트의 형식을 띈 음악도 널
리 보급되었다. 폭스 트로트란 보통 템포의 래그타임곡이나 재즈 템포의 4분의 4박자 곡으로 추는 사교댄스의 스텝, 또는 그 연주 리듬의 총칭을 뜻한다. 폭스 트로트라는 명칭은 동 물들의 걷는 속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1907년경에는 버니 헉(bunny hug), 1912년경에는 터키 트로트(turkey trot), 1913년경에는 캐맬 워크(camel walk) 등의 이름을 가진 스텝들도 유행하였다. 오늘날은 연주용어로는 쓰이지 않고 단지 사교댄스 용어로만 남아 있다.
김민기
<지하철1호선> 2001년에는 독일과 중국, 일본에서 해외 순회공연도 진행했고, 이 공로로 2007년에 독일문화원에서 수여하는 괴테 메달을 받아 한국인으로서는 윤이상과 백남준이래 세 번째 수상자가 되었다.
원래 '컴퓨터'라는 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컴퓨터가 아니라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20세기 초에 천문학에서 는 별을 연구하면서 굉장히 많은 계산이 필요하였다. 천문대는 망원경으로 별 을 보는 곳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연구를 위하여 망원경 한 대가 하룻밤에 수천 장의 사진을 찍는다. 각각의 별이 무엇인지, 별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각도가 얼마나 되는지 이 모든 것을 계산하는 사람을 컴퓨터라 했다. 대부분 여자들이었는데 당시 하버드 대학의 천문대에는 컴퓨터라고 불리는 계산하는 여성들이 약 200~300명 정도나 있었다고 한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을 만드는 프로젝트에도 계산을 하는 컴퓨터라는 여인들이 많이 필요
했다고 한다.
2차 산업시대부터 클래식 계열의 작곡가들은 예술지상주의 아래 고독한 과 싸워왔다. 예술이 사회성이나 윤리성 등과 같은 그 어느 것에도 구속받지 않고 예술 자체로 존재한다는 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다. 예술은 오로지 미(美)를 위해서만 존재하고 그 자체의 미적 완성이 유일한 목적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예술지상주의는 대중으로부터 외면을 받았고 그 빈자리에 미국식 대중음악이 차지.
2015 쿨리타(Kulitta)가 만든 음악을 사람이 작곡한 음악과 분간하지 못하는 단계까지 도 달하였다. 쿨리타가 만든 바흐 음악은 옛 인간 바흐가 만든 음악과 구분하기 어려웠다. 또 쿨리타는 모차르트 음악에 헤비메탈의 요소를 섞어 만든 새로운 음악을 세상에 내놓기도 했다. 인공지능이 만든 음악은 작곡 과정에서 이미 연주 까지 하고 있어 따로 연주할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인간의 연주 또한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이다.♥
[위대한관계]
그로테스크 작은동굴 +경향 동굴유적에나 볼수 있는 독특하고 희귀한 패턴
파가니니 작은 이교도
말러
가톨릭이 국교인 오스트리아에서 음악 감독직. 가톨릭 개종.
"나는 삼중으로 고향이 없다."
"오스트리아 안에서는 보헤미아인으로, 독일인 중에서는 오스트리아인으로, 세계 안에서는 유대인으로, 어디에서도 이방인이고 환영받지 못한다."
구스타프(Gustav)는 슬라브 조어 어휘로 '영광스러운 손님'
쇼스타코비치
S7 "레닌그라드" 전쟁의 참상과 승리를 함께 노래
S8: 인간에 대한 심리 묘사가 탁월한 작품. 전쟁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와 절망에 처한 인간의 심리를 비통하게 그려냄
전쟁으로 피폐해진 인간의 내면을 표현한다.
그리스도를 부인했던 베드로가 수탉의 울음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달았기 때문에 정죄의 상징 으로 유추할 수 있다. 한편으로 수탉은 연민과 애정을 상징하기도 한다.
쇤베르크 칸딘스키
피카소의 입체파 회화는 이집트 벽화에서, 쇤베르크의 12음기법은 피보나치 수열에서 따온 것이며, 칸딘스 키는 음악에서 색채와 기하학적 모형을 연상했다.
쇤베르크의 대표적인 현악 6중주 곡인 <정화된 밤>이나 <달에 홀린 삐에로>는 그의 문학적 상상력이 음악을 통해 구현 된 것이다. 두 작품 모두 연작시를 바탕으로 하며 시에서 나타 나는 음율과 감정선을 자신만의 음악적 기법으로 드러낸다. 후기 낭만파적 성향이 드러난 <정화된 밤>과는 달리 <달에 홀린 삐 에로)는 소프라노가 내레이터로 등장한다. 낭송하듯 부르는 소프라노의 목소리와 다른 7개 악기들이 내는 소리는 서로 융합돼 획기적이며 기이하고 모호한 성격의 곡을 이뤄낸다. 이런 쇤베 르크의 곡을 듣고 비평가인 알프레드 커(Alfred Kerr)는 "음악의 끝이 아니라 듣는 방식의 새로운 단계가 시작되는 것이다."라고 평 했다.
1923년작 <원 속의 원>은 칸딘스키의 대표작으로 큰 원속 에 작은 여러 개 원이 조화를 이루며 각기 다른 색채를 지닌 작품이다. 마치 불협화음을 포함한 음들이 저마다의 의미가 있는 쇤베르크의 곡처럼 음악의 궁극적 목적은 조화이고, 조화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쇤베르크는 자신의 음악이 대중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지쳐갈 때 화가로의 전업을 생각했다. 반대로 칸딘스키는 화가가 되기 전인 어린 시절부터 음악가를 꿈꿔왔다. 화가가 되고자 한 음악가, 음악가가 되고자 한 화가.
베베른 쇠라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우주를 각각 독립적이며 개별적인 사물들의 조합으로 보았지만, 동양에서는 우주를
끊임없이 순환하는 하나의 맥락으로 보고 있었다. 저명한 심리 학자인 니스벳(Richard Nisbett)은
"동양인은 세상을 가변적이라고 바라보며 전체 맥락 속에 서 서로의 관계성을 파악하는 반면, 서양인들은 사물을 주변 환경 과 떨어진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것으로 이해하며 분석적이다."
모든 것을 분석적 사고 위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때, 빛의 해체와 조성의 해체를 통해 분석적이며 논리적인 예술세계를 추구한 예술가들 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점묘주의(Pointillisme) 음악과 미술을 대표 하는 안톤 베베른(Anton Webern)과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였다.
영감을 준 인물. 쇤베르크와 괴테로 각각 무조음악과 색채론의 선구자였다. 그들은 후대 점묘주의 음악과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세기 후반 바그너와 드뷔시, 말러 등 미묘한 화성으로 색채감과 심리 묘사를 음악에 담아내는 작곡가들이 등 장한다. 그들의 음악은 꼭 협화음으로 해결돼야 할 필요가 없었 다. 이는 '기능화성적 조성으로부터의 결별'을 보여 주는 조짐이 었다. 20세기 초 음악이 점점 복잡해지고 미묘한 음들을 안정적인 화음으로 해결하는 게 어려워지자, 쇤베르크는 협화음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는 '무조 음악'을 고안했다. 즉 조성이라는 것 이 없다면 해결할 음도 필요 없어진다는 논리이다.
쇤베르크의 무조 음악은 이 후 제자인 베베른에 의해 더욱 체계적으로 정립됐으며 음을 일 정한 순서로 배열한 그의 음렬주의(Serialism)는 이후 셈여림까지도 포함한 총렬주의(Total Serialism)로 이어졌다.
괴테의 색채론 역시 쇠라와 신인상파 탄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20년 동안 연구하여 집필한 『색채론』을 통해 그는 색채는 광학 이론만으로 접근하여서는 안되며, 그 색채가 일으키는 효과가 뇌에서 어떻게 시각정보로 받아들여지고 이미지를 형성하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걸작 또는 명작을 뜻하는 '마스터피스'는 중세 길드에 소속된 장인들이 만들어내는 물품을 칭하는 단어였다. 하나의 명작이 나오기까지는 오랜 기간의 도제 생활이 필수였으며 무엇보다 롤 모델인 스승의 영향력이 지대했다.
쇠라가 보색 관계를 활용해 만든 테두리는 그림을 좀 더 눈에 띠게 만드는 효과를 줬다. 쇠라의 작품이 간결해 보이는 이유는 다양한 실험을 통한 수많은 과 학적 이론이 바탕 되었기 때문이다. 감각적이기보다는 분석적이고, 즉흥적이기보다는 논리적인 베베른과 쇠라의 예술세계는 결국 간결함이라는 응축된 정수로 귀결된다. 그들은 간결함이 지닌 힘과 본질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거슈윈과 로트레크
세속적인 것이 대중의 호응을 얻으면서 높은 예술적 가치 를 지니려면 단순함과 간결함이 바탕이 돼야 한다. 거슈윈과 로트레크의 예술세계에서도 단순함과 간결함은 대중을 설득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랩소디 인 블루" 역시 재즈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1920 년대에 작곡됐는데 블루노트 음계가 사용됐다. 블루노트란 재즈의 독특한 음계로 3음, 5음, 7음을 반음 내려서 블루스만이 갖는 특유의 감성과 느낌을 강조한 음계이다. 그의 "랩소디 인 블루" 에서 블루는 음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거슈윈의 음악은 특유의 단순하며 간결한 멜로디에서 오는 아름다움은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로트레크의 물랑루즈(Moulin Rouge) 광고 포스터는 그를 파리의 유명인사로 만든 계기가 됐다.
그는 포스터에 네가 지 이상의 색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강조할 부분만 정확하게 짚었다. 포스터의 특성상 짧은 시간 안에 집중하게 만들어야 하기 에 단순함이 아주 중요하다. 특히 그림에 모든 시선이 모였다가 중요 정보인 글자에도 시선이 옮겨갈 수 있도록 한 섬세한 구성은 그의 예술적 감각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ㅔ
또한 간결하면서도 예술적인 그의 폰트는 현대 상업 미술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르누아르>는 인물이 중심이 된 그의 화풍에서는 윤곽선이 모호하다. 르누아르는 여러 실험을 통해 윤곽선에 의지하지 않고 색상을 써서 작품의 빛과 형태를 만들어내는 기법을 완 성했다. 빛과 색채를 통해 양감을 화사하게 표현한다. 르누아르의 친구들 은 그의 작품을 보고 '무지개 같은 찬란한 반사광'이라고 평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모호한 윤곽선 대신 색상을 유려하게 사용한 그의 기법은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 달리 인물의 표정과 느낌을 좀 더 생동감 있고 명료하게 만들어준다.
<케이지와 폴록>의 예술이 복잡계와 가깝게 느껴지는 건 결국 우연성과 불확정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계는 현대의 물리, 금융과 경제, 생명과 자연현상까지 내재되어있다
케이지: "옛날에 작곡가는 천재였고, 지휘자는 폭군처럼 연주자들 을 쥐어짰으며 연주자들은 지휘자의 노예노릇을 했다. 그러나 우리 음악에는 폭군도, 노예도, 천재도 없다. 모두가 동등하게 함께 협조해서 만들어간다.
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도 누구에게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지 않고도 모든게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것 이다."
<피아졸라>의 음악은 주의 깊게 듣지 않아도 음악적 언어가 이미 몸속에 스며들게 만든다. 마치 술을 한 잔씩 계속 마시다가 결국에는 취하듯, 그의 음악도 어느샌가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남미 화가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보테로>의 작품들 또한 해석이 어렵거나 그로테스크적이지 않다. 대중들에 게 아주 친근하게 다가간다.
우리는 피아졸라의 음악을 귀로 듣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의 음악은 보는 것에 가깝다. 피아졸라는 자신이 겪은 감정 과 심상을, 음표를 이용해 섬세하게 악보 위에 그렸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보테로의 그림 또한 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춤을 추고 있는 그림, 심지어 정물화에서조차 음악과 춤을 들려주고 있는 듯하다. 보고 있지만 들리고, 듣고 있지만 보이는 작품이다.
피아졸라는 삶에 깃든 비애와 격정, 관능, 희망 등 라틴 정서를 표현했고, 보테로는 둥글둥글한 양감과 과장된 인체, 아이러니함을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소화했다. ♥
======================
[이토록 클래식이 끌리는 순간]
1920년 3월 8일 파리의 아트 갤러리 바르바장즈 Barbazanges 에서 사티는 '가구 음악'이라 는 개념을 선보였습니다. 그는 관객들에게 연주가 시작되더라도 음악을 무시하고 하던 일을 계속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연주 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대화를 멈추고 연주에 집중했지요. 결국 사티는 화가 나서 연주회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음악을 듣지 말라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그는 청중이 예술을 경배하는 태도에서 벗 어나기를 바랐고 이러한 사상은 이후에 결국 BGMback ground music (배경음 악)을 탄생시켰습니다.
사티의 음악은 당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1960년대 들어서 면서 공감을 얻고 주목받게 됩니다. 본인의 자화상 아래 남긴 "나는 이 늙은 세상에 너무 젊게 태어났다."라는 글귀가 가슴에 와닿습니다.
'짐노페디'Gymnopedie (Gymnos가 'naked'[벗은] 또는 'unarmed' [무장하지 않은]라는 뜻이고 paedia는 'youth' [청년]라는 뜻)는 그 리스어 '짐노페디아' gymnopaedia 에서 온 말로 고대 스파르타의 벌거벗은 청년들이 전쟁 춤을 통해 운동과 무술 실력을 과시한 연례 축제를 지 칭합니다.
사티는 곡의 제목을 별 의미 없이 지은 듯 보입니다. 불필요한 장식이나 과다한 감정 노출이 없는 심플한 음악
---------------------
1967년 미국 카네기홀에서 열리는 레벤트리트 콩쿠르에 참가
스승 갈라미언 교수와 매니지먼트 회사가 적극적으로 이 콩쿠르 의 참가를 반대한 겁니다. 갈라미언 교수의 다른 제자 인 핀커스 주커만이 콩쿠르에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사위원장인 아이작 스턴의 후원을 받고 있음. 주커만 실수.
주커만과 예정에도 없던 또 한번의 결선 연주를 펼쳐야 했습니다. 정경화는 주커만과 공동 우승
이차크 펄만이 1970년 5월 13일 런던 심포니와의 자선 연주회에 불참. 정경화가 추천됨
"며칠 뒤가 연주회인데 차이콥스키 바이 올린 협주곡 연주가 가능할까요?" 정경화는 즉시 가능하다고 대답하고 런던으로 날아갑니다.
한 달 뒤인 1970년 6월 레나타 테발디가 갑자기 녹음을 취소해 데카의 녹음실이 비게 되었습니다.
당장 영국으로 와서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과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을 녹음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데카의 녹음실 일정은 언제나 꽉 차 있었고 지금이 아니면 몇 년 뒤 에나 올까말까 한 기회
갑작스런 녹음을 위해 런던으로 가는 길, 비행기를 갈아타는 중간기착지 공 항에서 정경화가 연습을 함
https://youtu.be/P47pbgWnYd0?si=VDQ3E1OMwlSmF2NP
피르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이탈리아인은 쓰고 독일인은 연주하 고 영국인이 듣는다.미국인은 돈을 댄다."
미국에서 초연 <신세계로부터>(1893년, 뉴욕)
차이콥스키의 피아 노 협주곡 1번(1875년, 보스턴)
뷜로는 이 곡을 그 시즌에만 무려 130회 이상 연주했으며 차이콥스키를 단번에 스타로 만들었습니다.
1891 카네기홀 개막공연 PC1지휘
1958. 차이 ..콩쿠르 반클라이번 우승 공정한심사 미국의 영웅이됨.
최초로 낭만의 문을 연 작곡가는 베토벤이지만 고전과 낭만의 균형 을 갖춘 최초의 작곡가는 멘델스존이라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슈만은 이런 멘델스존의 음악에 대해 "자신이 살던 시대의 모순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그 모순을 화해시키려 했다."라고 평합니다. ♥
=====================
차이콥스키가 푸시킨의 『폴타바』로 끌어 당긴 것은 그의 핏줄일지 모른다. 그의 증조부 표도르 차이카는 폴타바 전투에서 표트르 대제 편에 섰던 코사크 기병이었다. 표도르의 둘째 아들 표트르는 성을 차이콥스키 로 바꿨다. 표트르 차이콥스키는 할아버지 의 이름을 딴 것이다.
성씨는 러시아어나 우크라이나어로 '갈매기'를 의미하는 '차이카(чайка)'가 어원이며 차이콥스키의 부계는 자포리자 코자키 혈통이었다.
부계는 우크라이나계로 증조부 표도르 차이카(Fyodor Chaika)가 표트르 대제 때 러시아군 장교로 폴타바 전투에 참전하고 러시아에 정착하였다. 할아버지 표트르 표도르비치 차이카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의료 훈련, 군의보조원으로 일했고, 아버지 일리야는 러시아 육군 중령, 야금학기술자연구소 산하 과학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아버지 일리야 페트로비치(1795 - 1880)는 정부의 탄광 공학자이자 광산 감독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