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영성 없는 진보 -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김상봉]

스카이7 2023. 10. 31. 23:59


독재 권력 타도가 추동했던 한국 민주주의
타자의 부정에만 머물며 ‘국가 형성’ 실패
정치 민주주의 넘어 경제 공공성의 확립과
타인의 고통에 대한 자기희생적 응답만이
퇴행하고 있는 한국 민주주의 살리는 길

한국인은 250년 전에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영국인들을 두고 야유했듯이, 투표장에서만 자유 시민일 뿐, 일상의 삶에서는 임금 노예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민주주의가 투표할 수 있는 권리 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 지금, 그런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구라기조(小倉紀藏)는 『朝鮮思想全史』에서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한국 사상은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두 가지 뚜렷한 개성을 보여주는데, 그 하나가 조선적 영성이며, 다른 하나가 사상의 혁명적인 정치적 역할이라고 주장한다

원효와 퇴계 그리고 동학 등으로 이어져 내려온 한국 사상사의 고유성
퇴계의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영적인 세계관의 모범으로 제시
조선적 영성이 나와 전체가 하나라는 깨달음을 의미. 
조선적 영성과 사상의 혁명적인 정치적 역할의 결합이 동학혁명을 통해 가장 모범적인 방식으로 실현된 것
혁명적 영성의 전통은 3.1운동 이후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종교는 보수화되었고 새롭게 등장한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계열의 운동은 믿음이나 영성과 무관한 세속주의적인 실천의 길을 걸었다. 일제 말기 국내에서 이렇다 할 대규모 봉기가 일어나지 않았던 이유
우리 내부의 이념적 분열이 전민족적인 봉기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던 까닭도 있었을 것이다.

전태일의 분신: 과도하게 독실한 기독교인. 그를 분신으로 이끌었던 것이 계급의식이 아니라 기독교적인 사랑이었다는 사실. 예수는 당대의 유대 민중에게서 민족을 해방할 메시아로 추앙되었으나, 예수가 그 역할을 거부했을 때, 버림받고 살해되었다. 예수가 그랬듯이 전태일이 죽음을 통해 계시했던 것도 사랑이었다. 그러나 예수의 사랑이 오해받았듯이 전태일의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사랑이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응답이다. 짧은 기간 전태일의 공적인 삶의 모든 장면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뜨거운 응답의 연속이었다.  단지 자기 자신의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운동가로만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그가 선구적으로 보여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응답은 자기의 권리에 대한 투쟁으로 박제화되어버렸던 것이다.

70년대 한국의 진보 운동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전태일의 계승이었다. 첫째로, 외적인 측면에서 70년대 한국의 진보 운동사는 진보적 기독교 운동을 무시하고는 기록될 수 없다. 70년대의 학생운동 및 지식인 운동에서 시작해서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그리고 도시빈민운동, 거의 모든 진보적 사회운동에서 교회는 매개의 중심. 70년대 한국 교회의 사회 참여는 전태일이 죽음으로 보여준 기독교적 사랑의 실천

그리스도교 사회운동이 좁은 의미의 교회의 울타리 안에 유폐된 것이 아니고 세상을 향해 열린 운동
종교적 교리에 갇히지 않는 영성이란 사랑이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응답으로 일어나는 사랑은 나와 타인이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는 깨달음, 즉 궁극적으로 나와 세계 전체가 하나라는 믿음 없이는 가능한 것이 아니다. 종교는 나와 타인 나와 세계가 하나의 절대자 속에서 하나라는 믿음을 통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자기희생적 응답을 가능하게 한다.

옥중서한 서준식

“오로지 성서만은 아니겠지만 여하튼 성서, 그 중에서 특히 복음서 부분은 소외되고 신음하는 세상 사람들의 인간적 해방을 바라는 자가 몸에 지녀야 할 고귀한 윤리의 보고이다. 내 생각에 그것은 소외된 많은 사람들에 대한 직접적인 구원의 말씀으로서 가치가 있다기보다도, 인간해방을 위하여 분투하는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많은 괴로움에 대한 구원의 말씀인 것 같다. 그것으로부터 주옥과도 같은 윤리를 캐내지 못한 사람들이란 인간해방을 자생적으로 바라는 사람이 아니기 십상이다.”
“모든 것은 사랑에서 우러나야 한다”는 준칙
‘소외되고 약한 사람들에게 대한 강력한 사랑’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근본적인 것이며, 늘 옳은 방향을 잃지 않으려는 우리가 가장 확실하게 의지할 수 있는 지표입니다.”

“내가 예수의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예수가 단순히 ‘약자의 편’이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들이 그 어떠한 강자가 된다 하여도 영원히 약자의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예수가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하겠다. 예수는 모든 이념이 경직화되고 ‘자율적’인 것이 되어버릴 때 그것이 인간을 얼마나 무자비하게 억압하는지를 나에게 가르쳐 준다. 우리들이 이념의 노예가 될 것이 아니라 항상 ‘인간에 대한 개개의 구체적인 사랑’에 굳건히 발 디딜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이것이 나 개인이 겪어야 했던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도 겪고 있는) 그 처참한 정신적 위기에 있어서 얼마나 절실하고도 귀한 가르침인가를 나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것이 ‘영원한 약자의 편’일 수 있는 한 가지 길이다.”

따지고 보면 율법도 처음에는 약자를 위한 해방의 규범이었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것은 노동하는 인간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 자체로서 물신화되면, 율법은 안식일에도 노동하지 않을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게 된다. 예수가 분노한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그러나 서준식은 이것은 예수의 시대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즉각 인식한다. 그리고 예수를 통해 “모든 이념이 자율적인 것이 되어버릴 때, 그것이 인간을 얼마나 무자비하게 억압하는지”를 깨닫는다. 이런 사정을 생각하면 서준식이 예수의 삶을 가리켜 “저의 인생의 나침판”이라고 고백하면서, “예수를 추체험” 하려 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서준식은 “예수를 신의 아들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 ‘예수’를 필요로 하지만, ‘하나님’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약자를 위했던’ 예수가 진정 약자를 위하여 그렇게도 강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 혼자 힘으로 그럴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약자를 위한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기 때문이라 한다”는 것을 그도 이해한다. 그리고 “‘약자를 위한 하나님’이 없이 강한 자는 그 강함으로 인하여 언젠가는 약자를 떠나기 마련이라고 한다”는 것 역시 잘 이해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약자를 위한다는 주장에는 또 어떤 근거가 있는 것일까?” 사실 이것이야말로 간단히 대답할 수 있는 물음이 아니다. 아니 그것은 이성의 힘으로는 대답할 수 없는 물음이다.

서준식의 유물론이란 그가 비판적으로 언급했던 통속적 유물론이 아니라, 과학적 세계관과 거의 같은 뜻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계몽된 이성이 표방해 온 과학적 세계관이란 존재에서는 유물론, 진리에서는 실증주의 그리고 윤리에서는 공리주의를 근간으로 삼고 있다. 
유물론이란 물질적인 것만이 존재하며 물질이 아닌 것은 모두 비존재이거나 부수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견해이다. 
실증주의는 보이는 것만이 진리라는 믿음이다. 
공리주의는 실질적으로 이익이 되는 것만이 가치 있는 것이라는 입장을 가리킨다. 
과학은 언제나 물질적인 것만이 존재하며, 보이는 것만이 진리라고 믿는다는 점에서 유물론적이고 실증주의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근대적 혁명 이론은 이런 과학적 세계관에 입각해 역사의 법칙을 말해 왔다.

하지만 서준식은 그런 혁명 이론이 얼마나 편협하며, 얼마나 허약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자각한 뒤에, 현실 세계에서 유물론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즉 과학적 세계 인식을 받아들이면서도 보이는 세계 너머 근원적인 진리를 개방하는 유신론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모색한다. 이미 칸트가 분명히 보여주었듯이 이성은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도 없고 부정할 수도 없다. 신은 이성의 그물에 잡히는 존재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과학이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신을 믿는다 해서 과학을 포기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물론과 유신론은 상호 모순적인 관점이 아니다.

한국의 개신교가 돌이킬 수 없이 극우 보수주의에 투항. 기독교가 극우화된 결과이다. 우리는 다시 남로당 무장대와 서북청년단이 충돌하던 해방 공간으로 퇴행하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바로 그 퇴행에 기인한다. 원인이 속류 혁명론과 기성 종교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영성을 포기한 것. 혁명적 영성이란 이 나라 민중항쟁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므로, 운동이 그 본래성으로부터 이탈할 때, 변질되고 부패하는 것은 정해진 이치이기 때문이다.

낡은 종교가 물러가고 새로운 믿음 그리고 그 믿음에 뿌리를 둔 새로운 영성이 도래할 때만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참된 믿음이 역사와 유리될 수 없는 것이라면, 그 믿음은 수운과 만해와 전태일이 믿었던 그 ‘님’으로부터 우리에게 도래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 밤이다. 그러니, 우리는 아직은 새벽이 올 때까지 깨어 기다려야 할 것이다.

'정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유  (0) 2023.12.14
정치 link  (0) 2023.12.14
극우는 왜 안보에 무능할까? 김연철  (0) 2023.10.31
윤석열에 대하여  (0) 2023.10.31
이승만의 반역행위  (0) 2023.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