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용담유사

스카이7 2023. 6. 23. 14:19
 하느님은 이 효박한 세상을동귀일체의 세상으로 만들어가시리라는 것은 수운의 혁명적 신념이다.
마태복음 (5:45)에도 이런 구절이 있다.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기독교는 이러한 역사적 예수의 사상을 계승하지않았다. 선악 이원론의 구약사상을 계승하여 초대교회 케리그마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기독교인의 가장 큰 병폐는 “악의 박멸” 이다. 자기자신이 악인데 누구를 박멸하겠다는 것이냐? 우리나라의 "예수쟁이"들은 예수에 대한 반역도일 뿐이다.
가장 본질적인 사실은 인간을 억누르는 권위주의적 이념들이 인간의 의식을 지배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 이념들의 총체, 그 근원,그 이념 중의 이념이 곧 “야훼” 혹은 “데우스”라는 이름으로 만유에 군림하는 천주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수운은 선포합니다: “인간의 평등은 오로지 인간이 하느님과 평등할 때 달성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수운의 포효에 대해 세계의 크리스챤들은 이렇게 말하겠죠: “기독교는 하느님 앞에 선 인간의 겸손을 가르친다.”
수운은 다시 말합니다: “겸손해야 할 주체는 우리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하느님은 사람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야훼는 민족신이고, 전쟁신이며, 질투하는 하느님이고, 호오가 확실한 하느님이며, 인간집단을 도륙하는 데 하등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이 정의를 결하면 그것은 하찮은 우상에 불과합니다. 민족에 대한 호오가 있는 하나님은 특정한 문명권 밖으로 수출되어서는 아니 되는 하느님입니다.
예수는 이러한 하느님을 거부했습니다. 야훼 하느님의 자격이 없는 우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예루살렘성전을 뒤엎었습니다. 즉 다윗왕의 보디가드 노릇을 하는 야훼를 축출해버린 것입니다. 예수는 다윗왕권을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예수를 다윗의 후계자로 만들고 그를 메시아로 조작했
습니다. 수운은 이러한 조작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서양의 사람들은 천주의 뜻을 빙자하여 좋은 일을 베푸는 듯하지만 실제로는천하를 취하려 한다."
수운은 초월적인 인격체로서의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그 해후로부터 1년간 자기검증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립니다: “하느님은 인격성을 초월하는 존재Sein 그 자체이어야 한다. 어찌 하늘 꼭대기에 상제님이 옥경대에 계시다고보는 듯이 말을 할꼬?" 인격성이 거부된다는 것은 인간세의 호오에 좌우되지 않는 정의로운 공평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수운은그러한 하느님의 특성을 "무위이화無爲而化"라고 표현했습니다.노자가 말하는 “도법자연道法自然"과 같은 뜻이지요.
니체는 하느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수운은 하느님을 살려내려 했습니다. 모든 시스템의 감금으로부터 하느님을 탈옥시켰습니다. 모든 관념과 언어의 폭력과 제도의 권위와 예식적 허위로부터 하느님을 탈출시켰습니다. 이러한 탈출을 이미 조선사람들은 링컨이 게티스버그 연설문을 읽고 있을 바로 그 시점에 성공시켰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하느님을 확보함으로써 새로운 개벽세상을 열었습니다. 조선의 민중은극렬한 탄압 속에서도 이 수운의 혁명사상을 조선팔도 전체의 레지스탕스운동으로 구현해나갔습니다.
여덟째, 다시개벽의 다시없는 좋은 찬스를 훼방 놓고 있는 것이 기독교의 전파라고 수운은 진단한다. 왕조권력의 수직구조를 근원적으로 타파하는 것은 왕권을 지원하는 모든 초월적ㆍ신비적 존재자들을 제거시켜야 한다. 신God이 인간 위에 초월적 권력으로 군림하는 한, 인간은 왕권의 권위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다. 기독교의 문제는 신의 유일자화, 실체화, 인격화, 초월자화, 전지전능의 허구화를 통해 범인을 기만하는 데 있다. 기독교의 유일신론monotheism 이야말로 왕권의 최후보루이며, 제국주의의 가면이라는 것이다. 애초에 수운은 서구문명의 강점인 과학과 합리적 사유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서학 즉 기독교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몸으로 인격신과 대면하는 신비체험을 한다. 그러나 자기체험을 1년 동안 깊게 검증하는 과정을 통해 초월적 절대자로서의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느님은 시공의 생성에 참여하는 과정적 존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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