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성경 대탐구] <제4편> 신구약 중간사

스카이7 2018. 2. 18. 13:48

[성경 대탐구] <제4편> 신구약 중간사


외경·위경의 등장


◇꿈꾸는 신학 신약의 지평=BC 424년께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가 완성됨에 따라 적어도 구약은 이 시기에 마무리된 것으로 다수의 학자들은 보고 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가 말라기였기 때문에 구약의 마지막 책도 말라기라고 보는 것이다. 일부는 다니엘서가 마카비 시대 즉 BC 2세기께 쓰여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카비 시대에 주류를 이루고 있는 문헌들은 단연 묵시문학이었다. 따라서 당시 대표적인 묵시문학 중 하나였던 다니엘서 역시 마카비 시대에 기록됐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구약과 신약 사이에는 일반적으로 2∼5세기의 틈이 발생한다. 신학자들은 이 시기를 '신구약 중간사'라 일컫는다. 대략 1000년 동안에 걸쳐 기록돼 왔던 구약이 마무리되고 그 후로 400여년간의 긴 침묵이 흐른 뒤 신약 시대로 접어든다. 


메시아가 이 땅에 도래할 것이라고, 그 메시아가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져 대속의 죗값을 치를 것이라고 예언한 구약 성서의 기록이 끝나고 그 메시아에 의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을 선포하는 신약 성서가 씌어지기 시작한다. 


◇히브리 사상과 희랍사상의 조우=이스라엘 민족과 팔레스타인을 무대로 쓰여진 구약성서에는 유일신 사상 즉 히브리 사상이 농익어 잘 배어 난다. 사실 히브리 사상은 구약 전반에 걸쳐 도도하게 흐르는 큰 산맥이나 다름없다. 반면 신약성서에는 히브리 사상뿐만 아니라 다신론적 희랍 사상이나 희랍 철학도 대단히 강하게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히브리 사상과 희랍사상의 조우가 이뤄지는데 그 시기가 바로 신구약 중간기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신구약 중간기에 그 조우는 어떻게 이뤄지며 히브리 사상이 신약 성서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독일 고대 유대교와 헬레니즘 종교사 연구소장인 마틴 헹엘 튀빙겐대학 명예교수는 그 해답을 갈망하는 자에게 당시 전개됐던 역사적 사건을 들춰볼 것을 권유한다. 해답을 찾기 위해 헹엘 교수는 BC 33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기에 시작된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은 문명사조인 헬리니즘이라는 새로운 문명의 움을 틔우는 데 한몫을 담당한다. 그때 알렉산더는 이소스 전투에서 페르시아 군대를 대파한 후 파죽지세로 동방 원정에 나서며 시리아와 페티키아,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해안을 따라 이집트를 점령한다. 그리고 BC 330년 바벨론 상류 가우게멜라 전투에서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 3세를 대파하고 통치 영역을 인도까지 확장해 드디어 동방의 새로운 지배자로 등극한다.


하지만 BC 323년 갑작스런 그의 죽음은 문명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만다. 그가 통일했던 세계제국은 권력투쟁에 휩싸인 나머지 그의 부하들에 의해 나뉘었고 신약성서의 역사적 중요 배경이 됐던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은 프톨레마이오스와 셀류커스 가문의 지배를 받게 된다. 여기까지가 헹엘 교수가 추적한 당시 세계사적 흐름이다. 


이때 다수의 유대인들은 헬라화된 이방 도시들로 강제 이주를 당하고 만다. 이들이 다름아닌 디아스포라다. 디아스포라란 원래 의미는 팔레스타인 바깥 지역에 살면서 유대종교의 규범과 관습을 지키는 유대인을 가리킨다. 좀더 광의적으로 해석하면 하늘나라를 고향으로 이 땅에 흩어져 사는 모든 교회를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흩어져 살고 있는'(약 1:1, 벧전 1:1)이란 뜻이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당시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까지 확산됐고 그로 인해 점차 역사가들의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훗날 그들은 이방 도시에서 받은 헬라의 문명과 문화를 고국 팔레스타인에 다시 전수했다.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 내부에서 헬라화는 가속화됐다. 무엇보다 헬라화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들은 유대종교 사제들이었다. 이들은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대응키 위해 헬라어를 수용했고 헬라식 문명을 받아들여 통치개혁을 시도했다고 헹엘 교수는 저서 '신구약 중간사'에서 밝히고 있다.


◇문명의 충돌과 혼합=이런 와중에서 시대의 흐름을 수용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나뉘었다. 문화의 격변기 속에서 유대인들은 헬레니즘 초기에 헬라문명의 거대한 물결에 휘말리기도 했다. 당시 문화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정체성과 신앙을 지켜야 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에 빠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유대인들은 헬라의 문화를 적극 수용했고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와 사상을 변증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사상에 대한 정체성을 표현하기에 이른다. 히브리적 신앙 즉, 유일신 사상이 희랍 사상에 토착화된 것이 바로 이 시기에 이뤄졌다. 유대인들은 헬라의 옷을 입고 당시 세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과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논증을 시도했다. 이 시기는 한마디로 '문명의 충돌과 혼합'을 의미한다. 이는 기독교 신앙의 새로운 문화에 대한 '토착화 모델'이라 할 수 있다. 헹엘 교수는 이 시기를 '복음의 준비' 과정이라고 일컬었다.


◇신구약 중간사의 외경과 위경=신구약 중간사에는 그 어떤 정경도 씌어진 흔적이 없다. 1000년 이상 줄기차게 쓰여진 구약 성서도, 그렇다고 새로운 언약인 신약 성서의 기록도 이 시기에는 멈추고 만다. 정경의 역사적 측면에서만 보자면 신구약 중간사는 '암흑의 시대'나 다름없다. 그러나 헹엘 교수가 간파했던 것처럼 신구약 중간사는 암흑의 시대가 아닌 복음의 준비기였다. 그때 대부분의 외경과 위경이 저작돼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회람됐기 때문이다. 외경과 위경은 구약 성서에 나타난 신학적 주제와 사상이 어떻게 전개되고 발전됐는지, 그리고 신약 성서와 초기 기독교의 신학 사상으로 어떻게 이어졌는지에 대한 정보를 풍부하게 담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외경이나 위경은 정경을 보다 폭넓게 이해하고 특히 기독교 사상의 발전 과정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보기 위해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자료라 할 수 있다.


위경(僞經)에 대하여

 

위경(僞經·pseudepigrapha)이란 '위조한 경전'이란 뜻으로 정경과 구약 외경에 속하지 않는 책들을 지칭한다. 위경이 씌어진 연대는 BC 2세기∼AD 2세기로 구약 외경과 기록 시점이 비슷하다. 위경의 저자는 대부분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구약 성서에 소개되는 위인들의 이름을 저자로 사용하고 있다. 진짜 저자가 의도적으로 구약의 유명한 인물을 내세워 기록한 것들이다. 의도적으로 가짜 저자를 등장시켰다고 해서 '위조한 경전'이란 의미가 내포돼 있다.


그러나 위경의 진짜 저자들은 독자들을 속이기 위해 가짜 저자를 내세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책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성서의 위인이나 유명한 인물을 저자로 내세웠던 것이다. 이런 경향은 당시 유대교에서 책을 쓰던 일종의 '저술 관습'이었다. 구약 외경에 등장하는 솔로몬의 지혜서, 므낫세의 기도, 예레미야의 편지, 바룩 등도 이런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저작권 개념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면 오해가 빚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위경 전체가 가짜 이름으로 저작된 것은 아니다. 일부지만 아담과 이브의 생애, 요셉과 아세넷, 요셉의 역사서 등은 실제 저자의 이름으로 돼 있다. 위경은 구약 외경과 같이 대부분 유대인들에 의해 씌어졌지만 일부는 초기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저술되기도 했다. 위경은 기독교에서는 말할 것 없고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도 그 권위가 배격됐다. 다만 동방정교회에서는 마카비 3, 4서를 정경의 범위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위경은 외경과 함께 구약 성서에 나타난 신학 사상과 그것이 신약 성서와 초기 기독교 신학 사상에 어떻게 접목됐는지를 좀더 폭넓게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특히 신구약 중간기에 산재했던 유대교의 여러 종파에 대한 정보를 풍부하게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위경은 명확하게 그 숫자가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대략 62∼65권에 이르고 있다. 다음은 장르별 대략적인 위경 목록이다. 묵시문서 18권(에녹 1·2·3서, 에스라의 질문서, 에스라의 계시록, 에스라의 환상, 바룩 2·3서, 다니엘의 묵시록 등), 유언문서 6권(열두 족장의 유언서, 모세의 유언서, 솔로몬의 유언서 등), 구약성서의 확대와 전설 13권(아리스테아스의 편지, 야곱의 사닥다리, 희년서,성서의 고대사 등), 지혜 및 철학 문서 5권(아히카, 포실리드의 위서, 마카비 3·4서 등), 기도 시편 송시 6권(다윗의 시편, 야곱의 시편, 헬라주의적 회당 기도서 등), 유대적 헬라주의의 작품 단편들 14권(비극작가 에스겔, 아리스토불루스, 시간기록가 데메트리우스 등) 등이다. 


구약 외경의 가치

 

종교개혁자 루터는 1534년 독일어 성서를 출판하면서 당시까지 구약 성서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구약 외경을 한 데 모아 구약과 신약 사이에 끼워넣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서문을 적었다.


"외경 즉, 성서와 동등시될 수 없지만 읽으면 유익하고 좋은 책들…."


구약 외경은 분명히 정경과 구별되는 열등한 책이다. 그러나 루터는 구약 외경을 다른 일반 책들과 구분했다. 예배나 교리 등 공적인 용도로 사용돼서는 안되겠지만 경건의 생활을 위해 읽으면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루터의 이 같은 생각은 스위스 종교개혁자 칼뱅에게 영향을 줬다.


칼뱅은 1546년판 제네바 성서의 구약 외경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외경이라 불리는 이 책들은 성서라 불리는 문서들과 어려움 없이 항상 구별되어 왔다… 외경이 좋고 유익한 가르침을 포함하고 있는 한 무시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옳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외경을 읽고 교훈이 되는 가르침을 얻는다…." 칼뱅 역시 루터의 견해와 일치하고 있었다. 종교개혁자들의 구약 외경에 대한 이런 견해는 그들의 신앙을 계승하고자 했던 후대 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스위스 개혁교회, 스코틀랜드 교회, 영국의 성공회, 침례교회 등은 이들 종교개혁자들이 취한 구약 외경에 대한 견해를 그대로 따랐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모두 15권의 구약 외경 가운데 에스드라스 1·2서와 므낫세의 기도 등 3권을 제외한 나머지 12권에 대해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로마 가톨릭 교회는 고위 성직자들이 모인 트렌트 종교회의(1545∼1563년)에서 구약 외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처음 확인했으며 회의가 진행되던 1546년 12권의 구약 외경을 인정했다. 가톨릭 교회는 12권은 이미 확정된 정경보다 훨씬 후에 첨가됐다고 해서 지금은 '제2 정경'이라 부르고 있다. 제1 정경은 진작 확정된 39권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가톨릭 교회와 기독교가 지칭하는 구약 외경은 다르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부르는 구약 외경은 지금 기독교가 매우 열등하게 취급하고 있는 위경을 말한다. 반면 기독교가 말하는 구약 외경은 가톨릭 교회가 오래 전 제2 정경으로 확정한 구약 외경을 의미한다.


그런데 기독교는 왜 구약 외경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기울리지 않고 있을까. 천사무엘 한남대 교수는 저서 '구약 외경의 이해'에서 두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는 선교사들의 영향을 꼽고 있다. 복음의 초창기, 한국에 들어온 서양 선교사들은 청교도적 신앙의 소유자였다. 따라서 그들은 전통적으로 구약 외경을 싫어했고 이 때문에 구약 외경을 성서와 함께 제본하는 것을 꺼렸다. 이에 대해 민영진 박사는 저서 '외경이란 무엇인가'에서 "절대적 영감으로 쓰인 성서와 그렇지 못한 외경을 함께 묶어 하나의 책으로 만드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면서 "이런 청교도적 신앙인들의 구약 외경에 대한 입장은 서양 선교사들에게 영향을 줬을 것"이라 고 분석했다. 바로 그들의 외경에 대한 견해가 한국 기독교에 영향을 줬다는 설명이다.


둘째, 한국 장로교회에서 표준 교리로 여기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영향을 들 수 있다. 구약 외경에 대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보통 외경이라고 부르는 책은 영감에 의해서 된 것은 아니며 경전의 일부도 아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는 권위가 없다. 또한 다른 인간적인 저서보다 더 사용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제1장 3절)


이런 견해는 사실 칼뱅의 입장과는 상당히 대조적으로 보인다. 이 신앙고백은 영국 교회를 개혁키 위해 1647년 웨스트민스터 신학자 총회에서 결정된 것이다. 그 후 장로교회와 개혁교회의 표준 교리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구약 외경에 눈을 돌려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루터와 칼뱅 등 종교개혁자들의 전통을 따른다는 점에서 그렇다. 종교개혁자들은 구약 외경을 성서와 함께 번역, 구약 성서와 신약 성서 사이에 끼워넣고 제본했다. 비록 정경은 아니지만 읽으면 신앙에 유익이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교회가 추구할 에큐메니컬운동(일치운동)에 하나의 구심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새겨볼 만하다. 기독교인이든, 가톨릭인이든, 동방 정교인이든 큰 틀에서 보면 한 하나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이다. 이들이 서로의 신앙을 이해하기 위해 나아가 에큐메니컬 예배를 위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책이 있다면 매우 유익할 것이다. 


이와함께 신구약 중간 시대의 문학과 역사에 대한 이해를 위해 구약 외경은 반드시 참고해야 할 자료다. 신구약 중간시대는 구약이 예언한 메시아와 신약이 성취한 메시아를 동시에 연결해주는 징검다리와 같다. 그래서 단 한 권의 정경도 쓰이지 않았던 중간시대지만 '암흑의 시대'가 아닌 '복음의 준비기'였다는 게 마틴 헹엘 튀빙엔대학 교수의 분석이다. 


정경과 외경의 차이

 

한국 기독교인들은 구약 외경을 거의 접하지 않고 있다. 구약 외경 자체가 매우 낯설기도 하지만, 정경에만 익숙해진 기독교인들에게는 그동안 배워왔던 신학 체계와 상당히 상충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구약 외경은 신·구약 정경과 몇 가지 측면에서 견해와 해석이 다르다.


첫째, 구원에 관한 문제를 꼽을 수 있다. 기독교의 구원은 통상 '예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따라서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게 기독교의 구원론이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9∼10)


그러나 구약 외경은 자선을 베풀 때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죄가 사해진다(토비트서 12:9)고 설명한다. 또한 집회에서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죄를 벗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자선을 베풀거나 부모를 극진히 공경하면 죄로부터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이 외경의 가르침이다. 기독교의 교리는 자선을 베푸는 것도, 부모를 공경하는 것도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지만 그것이 구원의 조건이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구원의 조건과는 무관하다.


둘째, 이미 죽은 자들의 속죄 문제에서 상충된다. 구약 외경은 산 자가 죽은 자들을 위해 속죄의 제사를 드리면 그들의 죄가 용서받는다고 언급한다(마키비이서 12장 38∼45). 이는 기독교의 입장과는 전혀 다른 가르침이다. 기독교는 모든 죄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가르친다. 이 때문에 산 자가 죽은 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특히 이미 죽어버린 자의 구원이나 죄의 용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한다는 게 기독교의 입장이다. 이 부분에서 구약 외경과 상충된다.


셋째, 구약 외경은 정경의 일부 내용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고 있다. 예컨대 솔로몬의 지혜서(11:6∼7)에 따르면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재앙을 해석할 때 첫번째 재앙인 강물이 피로 변한 이유에 대해 모세의 어린 시절에 바로왕이 이스라엘의 어린이들을 죽였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또한 여러 가지 해충들을 통해 주어진 재앙들은 이집트인이 동물을 숭배했기 때문에 받은 징벌이라고 해석한다(16:1). 기독교의 입장은 다르다. 이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천사무엘 한남대 교수는 저서 '구약 외경의 이해'를 통해 "구약 외경은 성경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거나 미성숙한 기독교인들에게는 숨겨져야 하는 책"이라고 설명하면서 "그러나 성경에 대한 올바르고 충분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성숙한 기독교인들에게는 읽혀져야 하는 책일 것"이라고 책자 끝 부분에 강조하고 있다. 


토비트서의 이해

 

◇신학은 무엇으로 표현하나=개인이나 공동체가 자신의 신학을 표현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조직신학자들은 신학적 주제인 신관 삼위일체론 기독론 성령론 교회론 등에 대해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방법을 택한다. 그런가 하면 역사신학자들은 구약에 전개되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해석하면서 자신의 신학을 표현하기도 한다. 실천신학자들은 성서를 설교자의 편에서 해석하면서 자신의 신학을 드러내곤 한다. 이 과정에서 신학자들은 그림이나 음악 무용 연극 영화, 특히 문학 등 예술 분야를 신학의 표현 수단으로 차용하는 경우가 많다. 


구약 외경에는 다섯 권의 신앙 단편 소설이 있다. 토비트, 유딧, 에스더 첨가서, 수산나, 벨과 뱀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에스더 첨가서만 정경의 에스더서를 보충키 위해 쓰여졌고 나머지 네 권은 독립된 책으로 저술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산나 그리고 벨과 뱀은 다니엘서에 첨가되기도 했다. 신앙 단편 소설로 쓰여진 이들 이야기는 비록 역사적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라 허구다. '허구가 어떻게 신앙에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가!'에 대해 독자들은 스스로 질문을 던지면서 번민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허구도 예술의 한 분야로서 신학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면 이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게 천 사무엘 한남대 교수의 설명이다. 


◇토비트의 저술 목적=구약 외경 중 신앙 단편 소설 가운데 토비트서는 신구약 중간시대에 유대인들 사이에서 애독됐던 책이다. 이 책이 다른 성서 사본들과 함께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것은 이를 잘 뒷받침해 주는 대목이다. 토비트(Tobit)는 토비아(Tobiah)의 준말이다. '야훼는 선하시다' 혹은 '야훼는 나의 선이시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 토비트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선을 행하셨는지에 대해 허구적 이야기를 빌려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 책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살고 있던 신앙심이 매우 깊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에 의해 쓰여졌다. 토비트서가 언제 정확히 쓰여졌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주전 225∼175년 사이에 쓰여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희랍의 주화인 드라크마(5:15), 희랍식 달(月) 이름인 디스트로스(2:12), 그리고 주전 515년에 재건된 제2성전(14:5) 등을 종합해 볼 때 이런 추론이 가능하다. 


토비트서의 저자가 염두에 두고 있는 독자들은 헬레니즘의 영향이 거세게 밀려드는 팔레스틴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도 포함되지만 그보다는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다. 이들은 성전도 없는 이방 문화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유대신앙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신앙을 포기하고 이방문화에 흡수될 수도 있었고, 반면 신앙을 지키며 유대인의 정통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후자의 노선은 신앙을 위해 이방인의 조롱을 당하거나 심지어 죽음까지 무릅써야 했다. 때로 그들은 풍습을 따라 친족과 결혼을 하고 싶지만 친족이 없어 결혼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유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은 신실한 자신의 백성에게 언제나 선을 베풀고 계신다'는 믿음의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었다. 이것이 토비트의 저자가 겨냥한 저술 목적이다. 


◇토비트와 신구약 중간시대 관계=토비트서가 신약 성서에 직접 인용된 구절은 없다. 그렇지만 신약 성서의 여러 저자들이 토비트서를 알고 있었고 따라서 그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예컨대 바울 서신을 보면 고린도후서 9장 7절(토비트 4:7, 16), 데살로니가전서 4장 3∼5절(토비트 4:12; 8:7∼8), 로마서 6장 23절(토비트 12:10) 등은 토비트서와 그 흐름이 닮은 꼴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예수의 승천 장면(28:18∼20)은 구조적인 측면에서 천사 라파엘의 권고 및 승천과 상당히 유사하다(토비트 12:16∼22). 토비트는 묵시문학이 아니다. 하지만 묵시문학에서 나타나는 요소들도 소개되고 있다. 특히 새 예루살렘에 대한 묘사(토비트 13:16∼18)는 요한계시록(19:1; 21:10∼12)과 상응한다. 그래서 천 사무엘 교수는 토비트는 신약 성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유용하다고 주장한다.


◇도움말 주신 분들 △김근주 교수(웨스터민스터 신학대) △김상근 교수(연세대) △김진섭 교수(백석대) △김회권 교수(숭실대) △민경식 박사(세계성서공회연합회 명예 번역 자문위원) △신현우 교수(웨스터민스터 신학대) △천 사무엘 교수(한남대) 


토비트서의 신학사상

 

◇의인의 고통에 관한 토비트의 신학 사상=토비트서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신학 사상 중 하나는 '의인의 고통'에 관한 문제다. 의인은 왜 고통을 당하는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의인이 왜 세상에서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의인의 고통을 위해 어떻게 섭리하는가? 의인의 고통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토비트서는 이런 주제를 가지고 허구의 세계를 통해 답을 하고 있다. 토비트서에 따르면 의인이 받는 고통의 원인은 세 가지다. 첫번째로 하나님의 시험(12:13)이다. 하나님은 토비트의 신앙을 시험코자 천사를 보내 장님이 되게 했다. 마치 욥의 믿음을 시험한 것과 유사하다. 두번째는 의인의 고통은 다른 사람들이 가하는 박해의 결과다. 세번째는 악마의 관여로 의인이 고통을 당할 수 있다. 예컨대 일곱번이나 결혼한 사라가 등장하는데 그는 결혼 첫날 밤에 악마가 신랑들을 죽여 버렸다. 그래서 과부가 되는 불행을 당해야 했다. 


그렇다면 이런 의인의 고통은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 토비트서는 기도에 의해 해결이 가능하다고 답한다. 고통 중에서 드리는 간절한 의인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만 의인이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께 직접 상달되지 않고 천사를 통해 전달된다는 것이 토비트서의 흐름이다. 천사는 의인과 하나님 사이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재자(3:17)라고 설명한다. 이 점에서 갈등을 느끼면 곤란하다. 부질없는 갈등이다. 토비트서는 정경을 보다 폭넓게 접근·이해할 수 있는 신구약 중간기에 태동된 자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초월자이시므로 인간이 직접 대면하거나 기도를 통해 만날 수 없고 천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촉할 수 있다는 것이 토비트서에 흐르는 맥이다. 의인의 고통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토비트서는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의인의 고통은 그래서 사람들에게 신앙적·교훈적 의미가 있다. 

◇자선에 관한 토비트의 신학 사상=토비트서에 흐르는 주요 신학 사상 중 또 하나는 '자선'을 들 수 있다. 유대교에서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예배다. 그러나 예배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세 가지 가르침을 꼽는다면 자선, 기도, 금식을 들 수 있다. 이 세 가지는 유대교의 세 기둥이다. 이는 신약 정경 마태복음(6:1∼18)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토비트서는 유대교의 세 기둥 중 특히 자선에 포인트를 두고 있는 듯하다.


"옳지 못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는 것보다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고 올바른 마음으로 자선을 행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황금을 쌓아 두는 것보다는 자선을 행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자선은 사람을 죽음에서 건져내고 모든 죄를 깨뜻이 씻어 줍니다. 자선을 행하는 사람은 장수하게 될 것입니다"(12:8∼9) 


토비트서의 또 다른 주요한 신학은 인과응보 사상이다. 하나님은 의인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기쁨을 얻게 하시지만 악인에게는 심판을 내리셔서 멸망케 하신다는 것이다. "너희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와 마음을 다하여 그 앞에서 참되게 살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돌아오셔서 다시는 외면하지 않으실 것이다 … 죄인들아, 돌아오라. 하나님 앞에서 옳은 것을 행하라…"(13:6) 


에스드라스서

 

내용은 흥미롭기 그지없다. 세 젊은이가 지혜를 겨루는 과정에서 그동안 중단됐던 성전 재건이 다리우스 왕 때 어떻게 다시 시작됐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은 인도에서 에티오피아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영역을 다스리고 있었다. 어느 날 왕은 부하들을 불러 연회를 베푼다. 모두 실컷 마셨고 왕은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밤 경호를 책임지던 세 젊은이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그리고 승리자에게 왕께서 선물을 하사토록 하자고 제의했다. 그래서 세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적어 왕의 베개 밑에 뒀다. 한 사람은 "포도주가 가장 강하다"고 썼고, 다른 사람은 "왕이 제일 강하다"고 적었고, 나머지 사람은 "여자가 가장 강하나 무엇보다 진리가 승리자다"라고 썼다(3:9∼12).


왕이 잠에서 깨어나자 세 젊은이는 그 배경을 설명하면서 자기들이 쓴 봉투를 읽어보게 했다. 그러자 왕은 모든 부하를 불러놓고 세 젊은이의 설명을 듣는다. 첫번째 젊은이는 왜 포도주가 강한지를 변론했다. 그리고 두번째 사람은 왕이 세상에서 왜 강한지를 역설했다. 마지막 세번째 사람은 여자와 진리가 어떻게 강한지를 설명했다. 세번째 사람은 다름아닌 스룹바벨이다. 여자가 왜 강한지에 대해 스룹바벨은 이렇게 설명한다.


"여러분 왕이 위대하지 않습니까? 술이 강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자는 누구입니까? 여자가 아닙니까? 여자는 왕을 낳고 바다와 육지를 다스리는 모든 사람을 낳습니다. 남자는 여자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남자가 금은 보석을 모으지만 아름답고 어여쁜 여자를 보면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여자를 바라보며 입을 벌리며 여자를 응시할 것입니다. 그는 금은 보석보다도 여자를 더 좋아하게 될 것입니다. 남자는 그를 낳아준 아버지와 조국을 떠나 그의 아내에게 매달립니다. 그는 자신의 생애를 마감할 때 그의 아내와 함께 하며 그의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조국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여러분을 다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4:14∼22)


스룹바벨은 이어서 진리의 위대성에 대해 또 열변을 토한다.


"그러나 진리가 위대하며 모든 것보다 더 강합니다… 포도주는 의롭지 못하고 왕도 의롭지 못하며 여자도 의롭지 못합니다… 그들 안에는 진리가 없으며 그들은 자기들의 불의함 때문에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계속될 것이고, 영원히 강하며, 영원히 존재하고, 편만할 것입니다. 진리 안에는 편견이나 편애가 없습니다… 모든 시대의 강함과 왕권과 힘 그리고 위대함은 진리에 속해 있습니다"(4:35∼40)


이렇게 스룹바벨이 연설을 마치자 모든 사람들은 "진리가 위대하며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강하다"(4:41)고 함성을 질렀다. 다리우스 왕은 그가 가장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지명했다. 그러면서 왕은 물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스룹바벨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왕이 취임했을 때의 약속을 상기시켰다.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에 보내 성전을 재건시키겠다고 약속했던 바로 그것을 상기시킨 것이다. 왕은 칙령을 내려 유대인들이 조국에 귀환해 성전을 재건할 수 있도록 조처를 취했다. 이때 스룹바벨이 하늘을 향해 드린 찬양이 인상적이다.


"승리는 당신에게서 나오며, 지혜도 당신에게서 나옵니다. 그리고 영광은 당신의 것입니다. 저는 당신의 종입니다. 저에게 지혜를 주신 당신께 찬미를 드립니다. 우리 조상들의 주님, 당신께 감사드립니다"(4:59∼60)


세 젊은이의 이야기에서 지혜자인 스룹바벨이 논증하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진리였다. 천사무엘 교수는 저서 '구약 외경의 이해'에서 "스룹바벨이 말하는 진리는 진실, 의로움, 불변의 사실 등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설했다.


에스드라스 1서에 소개되는 스룹바벨의 연설은 불후의 격언이 되고 말았다. "진리는 위대하다. 모든 것보다 강하다." 영어로 된 흠정역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Great is Truth, and mighty above all things." 이 문장의 출처는 구약 외경 에스드라스 1서 4장 41절에서 비롯됐다. 교부 신학자의 거성으로 불리는 아우구스티누스는 저서 '신의 도시'에서 "그리스도가 진리이기 때문에 진리의 위대성을 말한 것"이라고 역설한 뒤 "(구약 외경의) 에스드라스는 그리스도를 예고한 것으로 이해돼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가 열변을 토했던 여자와 남자에 대한 연설도 격언으로 자리잡고 말았다. "세계를 지배하는 자는 남자다. 그러나 그 남자를 지배하는 자는 여자다."


그런데 이 기간의 역사에 대해 정경(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과 외경인 에스드라스 1서는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어 신학자들은 이 부분에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정경과 외경 중 어느 쪽이 먼저 저술됐는지, 먼저 저술된 책을 어느 책이 참고했는지 등에 대한 문제는 사본학자들이나 성서비평학자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연구 대상이기 때문이다. 학자들의 번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번민에 대해 브루스 M 메츠거 프린스턴 신학대학 교수는 저서 '외경이란 무엇인가'에서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에스드라스 1서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다른 하나는 에스드라스 1서가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수정판일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에스드라스 1서와 에스라, 느헤미야가 둘 다 공통된 어떤 한 자료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추론하고 있다. 


에스드라스1서의 특징

 

구약성서 정경이 쓰인 그 긴 세월 동안 유대인 작가들에 의해 저술된 다른 책은 수없이 많다. 우리가 손에 들고 있는 정경에서 이런 책들은 가끔 언급되곤 한다. 여호수아 10장 13절과 사무엘하 1장 18절 등에 등장하는 '야살의 책', 민수기 21장 14∼15절에 소개되는 '여호와의 전쟁기', 역대기하 33장 18∼19절에 나오는 '이스라엘 열왕의 행장' '선견자들의 역사서'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런 책들은 어느 순간부터 역사의 기록에서 사라져버렸다. 정경으로 인정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필사돼야 할 가치가 많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외경이나 위경은 이런 유형의 책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히브리어나 아람어로 쓰인 이 책들 가운데 에스드라스 1서는 구약성서 정경의 칠십인역(헬라어 번역)과 함께 보급되고 있다. 이는 여타의 외경과 달리 구약성서의 책들과 매우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다른 외경에 비해 구약성서와 중복 구절이 가장 많다.


에스드라스 1서는 구약성서 어느 한 부분의 역사를 정경과는 다른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예루살렘에서 베풀어진 요시야 왕의 유월절 행사(대하 35:1∼36:23), 에스라 전체 혹은 에스라의 율법 낭독(느 7:73∼8:12) 등에 대한 사건이 에스드라스 1서에 재생돼 있다. 이 책은 바벨론 포로 이전인 제1 성전시대 즉, 주전 621년부터 유대인들이 포로에서 귀환했던 제2 성전시대인 주전 444년까지 이스라엘 포로기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제1 성전시대에 최고 종교개혁자였던 요시야 왕 시대부터 제2 성전시대 역시 최고 종교개혁자였던 에스라시대까지의 역사를 묘사하면서 요시야 때 정화됐던 제1 성전이 왜, 어떻게 파괴됐는지 그리고 어떻게 재건됐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편집 과정에서 저자는 '역사적인 정확성'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교훈적인 목적을 위해 허구적인 이야기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에스드라스 1서는 대부분 역대기의 역사와 그 흐름이 비슷하다. 그런가 하면 율법의 철저한 준수와 다윗이 세운 성전 전통 등이 상당히 강조돼 있다. 그러나 세 젊은이의 이야기(3:1∼5:6)는 구약성서에서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에스드라스 1서에만 등장하는 독특한 내용이다. 


유딧서

  

침묵 속에는 뜻이 있다


'외세의 침략에 개인과 공동체는 목숨만이라도 겨우 부지하며 살아야 하는가?' '죽더라도 싸워야 하는가?' '하나님은 과연 침묵하시는가?' '구원의 계획은 가지고 계신가?' 


이런 물음은 외세의 침략을 받아 본 아픈 경험이 있는 민족에게는 절실하게 다가오는 주제다. 군사·문화적으로 외세의 위협에 시달려야 했던 주전 2세기 중반과 후반,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에게 이 질문이 뼛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구약 외경 중 다섯권의 신앙단편소설 가운데 하나인 유딧서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쓰여졌다.


유딧은 '유대인 여자(jewess)'라는 의미다. 유딧서의 제목일 뿐만 아니라 이 책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유딧은 구약 성서에 등장하는 에스더나 드보라처럼 외세의 위기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한 여걸이자 지혜와 신앙, 그리고 미모까지 겸비한 이상적인 여인다. 익명의 저자는 주인공 유딧이 대제국 시리아의 침략을 받아 함락 직전에 내몰린 이스라엘의 핵심 요새 베툴리아를 어떻게 구했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때문에 독자들은 자신이 어떤 역사적 기록을 접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곤 한다. 하지만 이는 픽션이다. 유딧서에 등장하는 역사적 기록들은 사실이 아니다. 정확성도 없다. 신앙단편 소설인 토비트처럼 유딧서 역시 저자가 시대적 상황에 대한 해답을 픽션을 통해 전달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은 마카비 혁명이 성공하고 예루살렘 성전이 재봉헌된 후에 쓰여졌을 것으로 한남대 천사무엘 교수는 주장한다. 즉 주전 150∼125년에 익명의 팔레스타인 유대인에 의해 쓰여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딧서의 주요 등장 인물은 두 명이다. 하나는 주인공 유딧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적대자 홀로페르네스다. 후자는 대제국 바벨로니아 군대 총사령관으로 매우 강한 남성이다. 


유딧의 배후에는 야훼 하나님이 계시고 홀로페르네스의 뒤에는 당시 왕이었던 느부갓네살이 있다. 유딧이 경건과 지혜로 무장했다면 홀로페르네스는 막강한 군사력을 무기로 삼고 있다. 양쪽의 싸움은 마치 다윗과 골리앗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유딧서는 느부갓네살 왕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기도·행동으로 구원 얻는다


홀로페르네스는 엄청난 군사력을 동원, 유다를 제외한 주변의 모든 민족을 굴복시킨다(2:21∼28). 그의 임무는 단순히 속국을 토벌하는 데만 있지 않았다. 속국들에게 느부갓네살만을 신으로 섬기게 하는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소문에 불안해한다. 예루살렘의 대사제인 요아킴과 이스라엘 원로들은 회의를 열어 베툴리아를 비롯한 주요 성읍들에 방어를 준비했다(4:8). 모든 백성들은 한마음으로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으며 자기 자녀들이 원수들의 밥이 되지 않게, 자기 아내들이 포로로 끌려가지 않게, 조상이 물려준 도시들이 파멸되지 않게 그리고 성전이 이방인들의 손에 더럽혀지거나 치욕거리가 되거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게 해 달라…"(4:12)


유딧서의 저자는 이스라엘의 이런 기도 모습을 서술하면서 하나님이 이들의 부르짖음에 측은히 여기셨다고 간략하게 언급한다. 


그러자 홀로페르네스는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해 주변국들의 지휘관을 불러 놓고 작전을 요청한다. 놀랍게도 암몬의 총사령관인 아키노르는 이스라엘이 죄를 짓지 않으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진술은 교만하기 그지없던 홀로페르네스와 그의 부하들의 감정을 거스르는 원인이 된다.


다음날, 홀로페르네스는 이스라엘의 주요 성읍인 베툴리아에 대한 작전을 개시한다(7:1). 성읍은 완전히 포위됐고 이스라엘 백성은 마실 물과 음식이 없어 목말라 쓰러져 갔다. 백성들은 지도자들에게 항복하자고 아우성이었다(7:19∼29). 그러면서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계획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와중에 우찌야라는 사람이 닷새만 더 참아보자고 제안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닷새 동안 더 기다려본 다음 항복하자는 것이었다. 바로 이런 침통한 상황에서 드디어 유딧이 등장한다(8:1).


그녀는 성안의 이런 절박한 소식을 접하고 도성의 지도자 몇 사람을 자신의 집에 모셔놓고 따져 묻는다. 하나님의 응답(구원)을 닷새 동안 더 기다린 후 항복을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며 '구원 여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달렸다고 설파한다.


유딧은 땅에 엎드려 머리에 재를 뿌리고 베옷을 입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바로 당신께서 모든 권능과 위력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오로지 당신밖에는 아무도 이스라엘 민족을 보호하실 분이 없다는 것을 모든 나라와 당신의 모든 족속들이 깨달아 알게 하여 주소서"(9:2∼14)


그리고 유딧은 과부 옷차림을 벗어버리고 화려한 옷으로 갈아 입고 요란하게 치장한다. 자신의 계획을 하녀들에게도 밝히지 않고 하녀와 함께 베툴리아 성문을 나서 홀로페르네스의 군대 진영으로 발길을 돌린다. 유딧이 홀로페르네스에게 다가갔을 때, 그녀의 미모는 그를 감탄시켰고 환영받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녀의 달변은 바벨로니아 군대를 속이기에 충분했다. 유딧의 달변에 홀로페르네스는 이렇게 평가했다. "이 여자처럼 용모가 아름답고 말재주가 훌륭한 사람은 이 세상 아무 데도 없을 것이다"(11:21)


그리고 홀로페르네스는 유딧에게 좋은 요리와 포도주로 대접했지만 유딧은 사양하며 율법을 따라 준비한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그녀는 홀로페르네스의 허락을 얻어 매일 저녁 군대 진영에 있는 샘물에 몸을 담근 후 하나님께 민족을 위해 기도했다(12:8).


여성 손으로 이루는 해방


나흘째 되던 날, 홀로페르네스는 연회를 베풀고 내시 바고아를 시켜 그녀를 데려오게 했다. 유딧에 대한 욕망을 달성키 위해 베푼 연회였다. 홀로페르네스는 연회을 베풀면서 포도주에 마음껏 취했다. 밤이 깊도록 연회는 계속됐고 모두 지쳐 돌아가 유딧과 홀로페르네스만 침실에 남게 됐다. 드디어 유딧은 자신의 계획을 포착한 것이다. 포도주에 만취돼 침대에 쓰러져 자고 있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쳐 머리를 잘라 버렸다. 그리고 자른 머리를 하녀의 자루 속에 집어넣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기도하러 다닐 때처럼 밖으로 나가 베툴리아성으로 돌아왔다(13:10). 그녀는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백성들에게 보여주며 그를 어떻게 쳐 죽였는지를 말한다.


"…주님께서는 여자의 손을 통하여 그를 치셨습니다… 내 얼굴이 그를 유혹하여 그를 죽이게 했을망정 그는 나를 범하여 더럽히거나 욕을 보이지는 못했습니다"(13:15∼16)


유딧서,왜 쓰여졌나

 

익명의 저자는 어떤 목적을 위해 유딧서를 저술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 헬레니즘에 목적을 두고 있다는 게 천사무엘 교수의 설명이다. 알렉산더가 페르시아를 무찌르고 팔레스타인을 손아귀에 넣은 후, 이스라엘의 신앙을 가장 위협하는 요소는 다름아닌 희랍문화나 희랍철학 등 희랍식 삶의 방식이었다.


그것은 모세의 율법을 등한시하게 했고 결국 야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이는 반 헤브라이즘이다. 당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일은 희랍문화에 흡수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신앙의 위기일 뿐만 아니라 민족 정신의 위기라는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족의 생존과 구원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게 유딧서에 흐르는 메시지다.


[ 헤브라이즘·헬레니즘 ]


헤브라이즘은 유대교적·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을 말한다. 이 세계관은 구약성서에 나타난 사상 문화 생활 전통 등에 기초하고 있다. 헬레니즘과 함께 서양사상의 2대 조류를 형성한다. 헤브라이즘은 메시아 사상을 지닌 예언자적 정신으로 대표되기도 한다. 이는 고대 이스라엘이 신과의 계약이라는 전승에서 비롯된 '유일신 여호와'에 대한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일신의 역사관은 태초의 우주 창조와 우주의 종말이라는 단회적·직선적 시간관을 의미한다. 


반면 헬레니즘은 넓은 의미에서 고대 그리스에서 전파된 문화와 사상을 일컫는다. '그리스풍'이란 용어로 대표된다. 헬레니즘의 시기는 고대 그리스 세계의 종말에서 로마 시대의 성립까지로 보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 고유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가 융합된 그리스 문화 사상 정신 예술 등의 총체를 말한다. 헤브라이즘이 공동체적 삶에 기초한 메시아 유일신 사상으로 집약된다면 헬레니즘은 탈공동체적 개인주의·보편주의에 기초한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 사상으로 요약된다. 따라서 종교적 측면에서 보자면 전자는 유일신 사상, 후자는 다신론 사상이 자리잡고 있다.


벨과 뱀

 

구약 외경 벨과 뱀의 이야기는 고레스 왕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정경 이사야서와 다니엘서에 소개되는 고레스는 아스티야게스의 뒤를 이은 페르시아의 왕이다. 이 책은 고레스 왕궁을 배경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마치 역사적 사건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독자들은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적 배경을 기초로 꾸며낸 픽션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런 간과는 가끔 정경과 외경을 혼동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고레스는 다니엘을 어떤 친구보다 더 신뢰한다(2절). 당시 바벨론에는 벨이라는 우상이 있었는데 백성들은 매일 가장 품질이 좋은 밀가루 열두 말과 양 사십 마리 그리고 포도주를 듬뿍 그에게 바치곤 했다.


고레스는 어느날 다니엘에게 벨을 왜 숭배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여기서 다니엘은 이렇게 대답한다. "저는 인간이 만든 우상을 숭배하지 않고 천지를 창조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5절)


고레스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너는 벨이 매일 먹고 마시는 것을 보고도 그가 살아 있는 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느냐."(6절)


벨은 음식을 먹기 때문에 살아 있고, 따라서 이 사실을 알고도 벨을 신으로 섬기지 않는 이유를 따져 물은 것이다. 그러자 다니엘은 웃으면서 왕이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전하 속지 마시오. 그 신은 속은 진흙으로, 겉은 구리로 돼 있어서 먹고 마시지 못합니다."(7절)


고레스는 이 말을 듣고 화를 버럭 내면서 제사장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호통을 친다. "이 많은 음식을 누가 먹는지 말해 보아라. 그렇지 않으면 죽으리라. 그러나 벨이 이것들을 먹는다고 증명하면 다니엘은 벨을 모독한 죄로 죽을 것이다."(8절)


벨이 우상인지 아닌지에 따라 벨의 제사장들이 죽든지, 아니면 다니엘이 죽든지 기로에 선 것이다. 이 과정에서 70명이나 되는 벨의 제사장들은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전하! 전하께서 친히 먹을 것과 포도주를 차려 놓으십시오. 우리는 이제 물러갑니다. 그리고 문을 잠그시고 폐하의 옥새로 봉하십시오. 내일 아침에 와 보시고 벨이 이 모든 것을 잡수시지 않았으면 우리는 사형을 받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만일 다 드셨다면 모독자 다니엘을 사형에 처하셔야 합니다."(11절)


벨의 제사장들은 속임수를 썼던 것이다. 젯상 밑에 비밀통로를 설치하고 매일 그 음식을 자신들이 가져다가 먹고 벨이 먹은 것처럼 둘러댔다. 그러나 다니엘은 자기 신하들에게 신전 바닥에 재를 뿌리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왕과 다니엘은 옥새로 문을 봉인하고 궁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고레스 왕은 봉인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음식이 다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벨을 찬양했다(16∼18절). 바로 이때 다니엘은 웃으며 여유있게 왕에게 발자국을 확인해보라고 했다. 신하들을 시켜 뿌려놓은 재에 발자국들이 보였다. 이 발자국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것들이었다.


왕은 격노했고 장당 발자국의 당사자들을 잡아오라고 명령했다. 당사자들은 비밀통로를 통해 들어가 자신들이 음식을 먹어 치웠다고 실토했다. 그러자 왕은 그들을 사형에 처하고 다니엘에게 벨과 신전을 부숴버리게 했다. 벨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이제 살아 움직이는 뱀의 우상 이야기로 전환된다.


뱀 이야기에서 다니엘은 벨의 전개 내용처럼 '우상의 허구성'을 증명한다. 왕은 다니엘에게 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너는 이것도 사람이 구리로 만든 것이라고 하겠느냐? 보라, 저렇게 살아 있으면서 먹고 마시고 하지 않느냐? 그 뱀을 살아 있는 신이 아니라고 할 작정이냐? 그러니 저 뱀을 숭배하여라."(24절)


그러나 다니엘은 이를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러면서 왕이 허락한다면 칼이나 몽둥이를 쓰지 않고 뱀을 죽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왕의 허락을 받은 다니엘은 역청과 기름덩어리인 비계와 머리카락을 한데 넣고 끓인 뒤 그 덩어리를 뱀에게 먹게 했다. 다니엘이 사용한 이 방법은 파충류들이 먹기에 편한 먹이지만 일단 삼키면 소화기관이 녹아버리는 일종의 사약과 같다. 이것을 먹은 뱀은 그만 죽고 말았다.


그러자 바벨론 사람들은 화가 나서 왕까지 거역한다. "저 왕은 유다 사람이 되어 버렸다. 벨을 부숴버리고 (끝내) 뱀을 죽게 하고 제사장들은 사형에 처하지 않았느냐?" 그러면서 당장 다니엘을 자기들에게 넘겨 주지 않으면 왕과 가족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29절).


결국 왕은 다니엘을 군중에게 내어 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바벨론 사람들은 다니엘을 엿새 동안 굶긴 사자굴 속에 던져버렸다. 이 굴에는 7마리의 사자가 있었고 그 사자들은 매일 2명의 죽은 사람과 2마리의 양을 먹어치웠다. 다니엘은 꼼짝없이 사자의 밥이 된 것이다.


여기서 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예언자 하박국이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로 등장, 다니엘에게 음식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다니엘은 구약 정경 12 소선지서에 소개되는 예언자로서 바벨론 포로기 이전인 BC 600년께 활동한 인물이다. 다니엘은 하박국이 음식을 가져온 것을 보고 하나님께 이렇게 감사한다. "하나님, 당신은 저를 잊지 않으셨고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38절)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진 지 7일째 되던 날에 왕은 사실상 다니엘을 애도하고자 사자굴을 찾았다. 이 때 의젓하게 앉아 있던 다니엘을 보고 왕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주라 고백하게 된다. "다니엘의 하나님이신 주님, 당신은 위대하십니다. 당신외에 다른 신이 없습니다."(41절)


고레스 왕은 다니엘이 믿는 하나님을 참신으로 인정한다. 그리고 이방 왕들도 이스라엘의 신을 믿게 됐다. 이렇게 진실을 알게 된 고레스 왕은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나오게 한 후 대신 그를 죽이려고 했던 자들을 그 속에 처 넣었다. 그들은 사자밥이 되고 말았다.


외경 ‘벨과 뱀’은

 

하나님이 참 신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우상의 허구성'을 신랄하게 지적한 구약 외경을 든다면 '벨과 뱀'을 꼽을 수 있다. 벨과 뱀은 수산나, 세 청년의 노래와 함께 칠십인역 구약성서의 다니엘서에 첨가돼 있다.


이 책 제목에 나와 있는 벨은 바벨론의 최고 우상 신이며 다른 이름으로는 마르둑(Marduk)으로도 불린다. 뱀 역시 바벨론에서 숭배되는 우상이다. 벨은 '무생물 우상신'이고 파충류인 뱀은 '유생물 우상신'이다. 저자는 이 두 우상이 허구라는 것을 주인공 다니엘을 통해 풍자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벨과 뱀은 언제, 어디서, 누가 썼는지에 대해 단정짓기 힘들다. 다만 다니엘서가 칠십인역으로 번역된 주전 100년경까지 존재한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기록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 우상 숭배의 허구성을 지적하기 위해 씌어졌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시키고 자신들의 문화와 종교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기록됐다. 특히 외세에 의해 이방종교의 신앙이 강요될 때, 이방인의 종교를 풍자할 때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은 씌어졌다.


다만 독자들이 픽션이라는 사실을 놓치지만 않으면 구약의 다니엘서 등 예언서를 폭넓게 이해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다. 구약 다니엘서의 흐름과 비슷한 데가 한두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구약 중간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안목도 키워줄 수 있는 책임에 분명하다.


집회서


◇지혜의 책 집회서=구약 외경에는 두 권의 지혜문서가 있다. 집회서와 솔로몬의 지혜서가 바로 그것이다. 정경 구약 성서에는 욥기, 잠언, 전도서 등 세 권의 지혜문서가 있다. 집회서는 모두 51장으로 구성된 방대한 책이다. 구약 외경 가운데 가장 길며 저자의 이름을 밝힌 것도 유일하다. 집회서의 저자는 벤 시라. 그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강의 내용을 한데 묶어 이 책을 펴낸 것으로 보인다. 벤 시라는 모세 오경과 예언서 및 유대교의 주요 문서들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가르치는데 평생을 바친 학자요 교사였다. 저자는 당시 유대 전통에 충실했던 전통주의자인 동시에 헬라 문화에 대해서는 개방적이었다. 외세 문화를 배척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전통만을 고집하지도 않은 매우 균형 잡힌 가치관의 소유자였다는 게 천 사무엘 한남대 교수의 설명이다. 


◇지혜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저자는 지혜를 '하나님의 첫번째 피조물'로 규정한다(1:4). 그래서 지혜의 삶이란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주님을 두려워함이 지혜의 완성이며 지혜는 삶의 번영과 건강의 꽃을 피운다. 지혜는 지식과 총명을 비처럼 내려주고 지혜를 간직한 사람들의 영광을 드높인다"(1:18∼19)


그렇다면 주님을 두려워하는 삶이란 무엇일까? 저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32:14)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계명이란 하나님의 가르침이며 말씀을 의미한다. 사회정의에 대해 저자는 우선 가난한 사람을 보살펴주고 빈궁한 사람을 착취하지 말 것을 역설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빵 한 조각이 생명이며 그것을 빼앗는 것이 살인이다. 이웃의 살길을 막는 것은 그를 죽이는 것이며 일꾼에게서 품값을 빼앗는 것은 그의 피를 빨아먹는 것이다"(34:21∼22)


◇오만은 죄의 시작=오만에 대해 집회서 기자는 '죄의 시작'(10:13)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들이 미워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주님께서는 오만한 민족을 뿌리째 뽑아내시고 그 자리에 겸손한 사람들을 심으신다"(10:15)


그러면서 하나님은 자신의 오묘함을 겸손한 사람에게만 드러낸다(3:19)고 말한다. 결혼 생활에 대한 지혜의 언어는 상당히 엄격하다. 죄인들이 받을 보상은 고약한 아내를 맞는 것이다(25:19). 간음하는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없으며 벌 받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만찬에 대한 예절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네 앞에 놓인 것만을 점잖게 먹어라. 게걸스럽게 먹으면 남의 빈축을 산다. 예의 바르게 먼저 숟가락을 놓아라. 포식하는 것은 실례가 된다"(31:12∼17)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에 대한 평가도 날카롭기 그지없다. "부자가 미끄러지면 많은 사람이 그를 부축해주고 허튼 소리를 하더라도 오히려 그를 찬양한다. 그러나 가난한 자가 미끄러지면 사람들은 그를 나무라고 이치에 맞는 말을 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13:22)


죽음에 대한 갈파 또한 깊다. "죽음이 있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네 앞에 간 사람들과 네 뒤에 올 사람들이 있음을 생각하여라.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내리신 주님의 선고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뜻을 어찌 거역하려느냐"(41:3)


◇2000년을 넘나드는 창조론=우주에 대한 견해는 구약의 시편, 잠언, 전도서에 등장하는 사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해 달 별 무지개 번갯불 천둥 바람 안개 이슬 바다 동물 등 온 우주만물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한다(42:15∼43:33)고 기록하고 있다. "태양을 만드신 주님은 위대하시며 태양은 그분의 말씀을 따라서 제 궤도를 달린다"(43:1∼5) 당시 저자는 천동설의 우주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천체 물리학자가 이 구절을 대하면 정말 깜짝 놀랄 일이다. 우주 전체로 보면 수많은 행성을 거느리고 있는 태양도 일정한 궤도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튼 이 구절은 2000여년을 훌쩍 뛰어넘는 창조론적 기사라 할 수 있다.


선조들에 대한 평가도 엿볼 수 있다. 다윗에 대한 평가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주님께서는 다윗의 죄를 씻어주셨고 그의 힘을 영원히 높여주셨으며 그에게 왕통을 약속하시고 이스라엘의 영광스러운 왕좌를 주셨다. … 당신은 여인들에게 몸을 내맡기고 욕정의 노예가 된 적도 있어, 명예를 더럽히고 가문을 욕되게 하여 자식들이 천벌을 받고 후손들이 환난을 당하게 만들었으며 왕권은 둘로 갈라져"(47:11∼22) 천 사무엘 한남대 교수는 이를 '균형 있는 평가'로 간주했다.


지혜의 추구에 대해서는 저자가 최고로 강조하는 부분이다. "나 이제 결론삼아 말한다. 지혜를 돈으로 살 생각은 말아라. 네 목에 지혜의 멍에를 씌워라. 그리고 네 마음에 지혜의 가르침을 받아라. 지혜는 바로 네 곁에 있다"(51:25∼26)


이렇게 볼 때 집회서의 키워드는 다름아닌 '지혜'다.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그 삶이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저자 벤 시라는 이것을 가르치고자 집회서를 썼다. 


◇문화의 수용과 거부의 기준=벤 시라가 살았던 시대는 헬라 문화가 거세게 밀려들었던 때다. 팔레스타인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헬라 문화는 '새로운 문화' '외래 문화'였다. 이런 문화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젊은이들에게는 매력적이다. 바로 이런 시기에 집회서가 쓰인 것이다.


외래 문화가 밀려들어 전통적인 신앙과 가치관이 붕괴되고 전통적인 사회질서조차 변화의 바람을 맞았던 그 시기에 벤 시라는 헬라 문화를 정면으로 반박하지 않았다. 유대교의 가르침과 부합되는 한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참된 지혜는 헬라 문화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내재돼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 이것이 집회서가 쓰인 목적이다. 


◇구약 사상과 일치하는 집회서=집회서에 나타난 신학 사상은 상당히 분명하다. 하나님은 오직 영원부터 영원까지 한 분(36:4)이시며 창조주(39:17)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보응하시는 분으로 인식했다. 죄인이 회개할 때 용서를 베푸시는 분(17:24)이며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그들과 계약을 맺으신 분(44:20∼21)이라고 설명한다. 인간관도 구약 성서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벤 시라는 인간은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지으신 피조물(17:3)로 묘사하고 있다. 피조물은 흙으로 만들어졌으며 죽은 후에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할 존재라는 정경 창세기의 사상과 맥을 같이 한다. 그리고 인간은 창조될 때부터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로 스스로 선악을 구별할 줄 안다(15:14)고 가르친다. 집회서에 흐르는 신학 사상은 구약 전체에 도도하게 흐르는 사상과 일치한다. 


교육용으로 널리 사용했던 ‘집회서’

 

유대인들은 집회서를 유익한 책으로 받아들였지만 결코 정경의 권위를 부여하지 않았다. 라틴어 사본에서 집회서는 '교회의 책' 혹은 '교회에 속한 책'이란 뜻이다. 이 책이 교육적 차원에서 교회에서 널리 사용됐다는 것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신약 성서 저자들이 집회서의 본문을 직접 인용한 곳은 없다. 하지만 신약의 저자들은 이 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야고보서에 대한 집회서의 영향은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야고보서 기자는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5:14∼15)라고 권면한다. 집회서에는 "내 아들아 네가 아플 때, 지체하지 말고 주님께 기도하라. 그러면 그가 너를 고치시리라"(38:9)고 기록돼 있다.


또한 집회서 11장 18∼19절은 누가복음 12장 16∼21절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부자에 대한 예수의 비유와 흡사하다. 집회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근검절약하여 부자가 되었다면, 그에게 할당된 보상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는 '나는 이제 편안히 쉬며 내 재산으로 잔치를 벌일 것이다'고 말하겠지만, 그것이 얼마나 오래 갈지 알지 못하며, 결국에는 자기 재산을 남에게 남겨놓고 죽은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누가복음 기자가 집회서의 본문을 참고한 것으로 천 사무엘 교수는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