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교회 다니십니까.
길희성 / 대한기독교서회 펴냄(2015년)/ 2015.10.6 이종태 행복경영연구소장 요약
□ 저자 길희성은
- 평생 예수를 믿고 살아왔으며 신학, 종교학, 철학을 두루 공부하면서 교회에서 설교도 제법 많이 한 사람이다.
- 서울대(철학), 예일대(신학석사), 하버드(비종교학박사)에서 공부를 했다.
- 교수 역임지는 미국 세인트 올라프대, 서울대, 서강대이다.
- 현재 서강대 명예교수이자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이다.
□ 묻지마 신앙이 판치고 있다. ★★★
- 가르침이 납득이 안가다 보니 무조건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신앙이 참다운 신앙이라 간주되고 있다.
- 맹종이 맹신을 낳고, 맹신은 잘못된 확신을 낳으며, 그릇된 확신이 광신을 낳는다.
- 정직한 신앙은 묻고 의심하고 고민하는 신앙에서 온다.
☞ 교회생활이 사회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은 잘못이다.
□ 목회자중에 자기도 믿지 못하는 말을 할 수 있다.
- 오늘의 세계와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과 소통이 되지 않는 메시지는 죽은 것이다.
□ 일요일에갈 곳 없는 사람이 가는 곳이 교회이다. ★
- 아니면 삶이 너무 무겁고 버거워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찾는 곳이다.
- 어릴 땐 지옥 간다는 협박에 겁이 나서 갔으나 누가 지옥을 믿는가?
- 또 누가 교회에 다녀야만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가?
- 만약 교회에 안 다녀서 지옥에 간다면 세계 인구 대다수가 지옥에 갈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믿겠는가?
☞ 이런 배타적인 구원관이나 소수만 구원받는 무자비한 하나님이 지성인들에게 기독교를 외면하게 만드는 큰 원인이 되고 있다.
□ 교회를 멀리하는 이유 ★
- 몸집 불리고, 무허가 신학교의 저질목사 양산, 헌금강요와
- 거북할 정도로 유치하고 저질스러운 설교에
- 목사나 장로의 독선과 권위주의 불투명한 헌금 사용처에다
- 감싸주고 품기보다 단죄하고 군림하는 엄한 하나님, 전제군주의 하나님, 비상식적인 기적들,
☞ 자유, 책임, 사랑, 정의 등 좋은 것은 하나님께 돌리고 인간의 죄악만 들먹이는 신앙이 초신자에게는 불편한 점들이다.
□ 요즘 서울 강남의 유명사찰의 신자 분포 ★★★
- 새로운 신자는 1/3, 기존신자 1/3, 개신교와 천주교에서 개종한 신자 1/3이다.
- 불경은 합리적이면서 심오한 지혜의 가르침이 있다는 인상을 준다.
- 적어도 절에 가면 마음만은 편안하게 해 주는 강점이 있다.
□ 맹목적인 예수 숭배가 가장 큰 문제다.
- 예수 숭배를 청산하려면 예수 자신의 가르침을 되찾아야 한다.
- 예수를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 떠받들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일은 그만해야 한다.
- 예수를 저 높은 곳에 두고 우러러 섬기는 대상이 아니라, 그의 신앙, 그의 삶을 따라야 한다.
- 기독교 창시자인 예수의 비전을 품고 인격을 흠모하고 가르침에 따라야 한다.
☞ 현대 기독교는 예수에 대한 신앙으로부터 예수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
□ 예수에 대한 신앙과 예수의 신앙은 무엇인가? ★★★
-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중심의 신앙을 가진 사람임을 기억하자.
- 하지만 예수를 하나님 자리에 올려 신성시하는데 많은 문제가 되고 있다.
-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불렀다. 하나님을 따르고자 자신을 비운 존재이다.
- 철저하게 자신의 힘을 뺐기에 하나님의 힘으로 충만했다.
☞ 예수님 자신은 결코 사람들에게 자기를 믿으라고 하지 않았다. ★
□ ‘율법 중에 어느 것이 제일 큰 계명이냐’에 대한 예수님의 답은?
-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
- 만약 예수님이 요즘 태어났다면 자연사랑도 포함했을 것이다.
□ 항변 한번 못하고 수치를 감내하는 교계
- 1990년대, 권사들의 전쟁(옷 로비 사건) 때부터였다.
- 한국 기독교가 망할만하면 망해야 하고, 흥할만하면 흥할 것이다.
- 단지 나 자신의 하나님 신앙과 예수라는 존재에 고심할 뿐이다.
- 개독교라고 해도 변명이나 항변하고 싶지 않고, 들어도 싸다. 오히려 속 시원하다고 한다.
☞ 교회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나 억압이 크기 때문이다.
□ 기독교 신앙을 대하는 태도에 근본 문제가 있다. ★
- 그토록 많은 시간에 말도 안 되는 저질설교를 들으며 에너지를 쏟고 있을까?
- 대다수가 기독교 진리가 좋고, 수긍하고, 사랑해서 교회를 다니는 게 아니다.
- 대다수가 그렇지 않는데도 교회를 다닌다. 만족하는 사람은 만나기 어렵다.
- 순수한 영적 욕구와 불순한 인간적 욕망이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 아니고, 공존하기 때문이다.
☞ 문제는 부차적목적이 본래목적보다 앞서고 부차적관심 때문에 어영부영 다니는 경우가 많다.
□ 교회 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 심심해서, 친구 따라, 유명 인사들을 보려고, 사업에 도움 받으려고, 세포조직의 압박으로,
- 교회에서는 쉽게 인정받으니까, 인간관계와 나오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 성가대 음악이 좋아서, 교회건물이 웅장해서, 가족의 요구로……
☞ 실로 다양하고 흥미로운 답이 나올 것이다.
□ 고민많고 불만 많던 시기에는 보수적, 청교도적 설교는 안 들린다.
- 가장 많은 설교가 우리 죄를 대속하려 십자가에 피 흘리며 죽으심이다.
- 십자가 설교는 아무리 세뇌되어도 제일 지루하고, 이 믿음이 없어도 신앙생활에 문제가 없다.
- 뻔한 이야기에 위선적이 되는 것은 복음주의 보수신앙의 문제임을 나중에 알았다.
☞ 그래도 공동체 생활이 재미있고, 배우자를 만나는 사람도 있으니 그리 손해 볼 일도 아니다.
□ 한국교회 문제는 오히려 신앙이 너무 넘치고 뜨거워서 탈이다. ★★★
- 본질적 문제는 도적적 타락이나 신앙의 부족 같은 데 있기보다는, ★★★
설교를 젊은 세대와 교육받은 사람들이 알아듣고 수긍할만한 언어로 전달하지 못하는데 있다.
- 정통 신앙의 이름으로 인간의 상식과 이성을 무시하고 의심을 금기시하기 때문이다.
□ 묻지마 신앙이 판치고 있다. ★★★
- 성경, 가르침, 교리가 납득이 안가도 무조건 믿으라고 한다.
-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게 참다운 신앙이라 간주된다.
- 우리나라 대다수 교회의 모습이다. 강사가 모르거나 의심하고 전하면 전혀 전달이 안 된다.
☞ 이제는 머리로 납득할 수 있고, 가슴으로도 사랑할 수 있는 진리를 제시해야 한다.
□ 신앙생활의 고민은 무엇인가?
- 의심이 들어도 그냥 묻어두지 않으면 신앙부족, 성령은사 없음이라 생각해 버린다.
- 그러니 좋든 싫든 그냥 교회에 다닌다.
☞ 저질 기복신앙을 넘을 수 있는 대안적 신앙의 이해를 제시 못하고 있다.
□ ‘신앙 따로 사회생활 따로’를 조장하고 있다.★★★
- 생각하지도 않고 묻지도 않는 신앙은 이중생활을 조장할 수 밖에 없다.
- 매우 편리한 신앙이지만 진지한 신앙은 아니다.
- 이성과 지성을 무시하고 양심과 양식을 도외시하는 신앙은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 이성이 신앙의 잣대는 아니나, 이성을 반하여 억지로 믿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 신앙진리는 이성을 초월하는 신비이지, 이성에 못 미치는 미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 신학도 배움과 현장은 완전 다르다.
- 신학교에서 배운 신학 지식은 말짱 헛것이라 한다.
- 결국 선배목사들 하는 대로 무대포로 밀고 나가야 한다.
☞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가슴으로도 사랑하지 못한다. ★
□ 좋은 믿음은 가시적인 행위가 아니다. ★★★★★
- 인간 내면의 태도, 인격이 지닌 어떤 성품이다.
- 믿음은 정통교리와 숱한 기적이야기들을 그대로 믿는 것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 지적 수용은 지적 수긍과 다르다. 교회는 지적 수용만 요구한다. ★★★
- 순종과 복종, 저주의 압력에 밀려 평생 의심을 품고 살고 있다면 신앙생활이 아니다.
☞ 지적 수긍이 되지 않아 수용을 못하면 신앙 없는 사람으로 간주되어 매도 당한다.
□ 신앙의 일차적 행위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다.
- 성경이나 교리에 동의하고, 수용하는 행위가 우선이 아니다.
- 자신만을 믿거나, 물질,돈, 명예, 권력을 믿고 숭배하는 마음을 버려라.
-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마음의 태도와 행위가 믿음이다.
- 인간은 하나님을 배신하지만, 신실한 하나님은 끝까지 신의를 지키는 분이다.
☞ 불신은 지적 의심 이전에 신뢰의 결핍 내지 부족이다.
□ 믿음이란 ★★★
- 예수의 십자가 보혈이라는 교리적 진술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행위라기 보다는
- 그 진술 배후에 있는 더 근본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은혜를 신뢰하는 믿음이다.
- 신뢰는 지적 행위이기보다는 감정과 의지의 문제다.
- 신앙 깊이는 그가 정말 물질적 축복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신뢰하는가 보면 안다.
☞ 방언을 강요하거나, 공포저주와 불안으로 겁주어 신앙으로 유도하는 건 믿음이 아니다.
□ 진리라 고집하며 주입하려고만 한다.
- 억지로라도 믿는 체하거나 찜찜해도 무시하는 게 융통성이라 선전하고 강요한다.
-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선물인 지성과 상식을 포기하는 신앙은 진정한 것이 아니다.
- 신앙은 상식과 지성의 희생이 아니라 이전의 삶을 포기하고 자신의 방식을 과감히 청산하는 희생이다.
■ 그리스 철학, 과학, 동양종교와 기독교의 만남 ★★★
1.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의 만남은 고대와 중세를 통해 성공적으로 극복했다.
- 이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톨릭 신학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 만약 초기에 그리스, 로마 철학의 도움이 없었다면 유대교의 한 분파로 소멸했을 것이다.
- 불행히도 개신교는 서구 전통의 고전적인 형이상학적 영성을 흡수하지 못했다.
☞ 결국 한국 개신교는 좁고 답답한 근본주의 신앙에 머물고 있다.
2. 근대과학과 기독교 신앙의 만남 ★
- 초등학교만 나와도 초자연적 기적에 대한 믿음이 설 자리를 앗아갔다.
- 과학은 사실의 언어에 익숙하게 하고, 사실의 진리를 전부로 여긴다.
- 문제는 가르치는 부류의 사람(목사 등)도 똑 같은 의문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 의심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묻지마 신앙’만 남게 된다.
☞ 믿지 못하면 믿음이 없다고 매도한다. 그래서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
□ 사이비과학과 사이비 신학으로는 안 된다. ★★★
- 신앙을 이해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 고도의 과학 교육을 받은 멀쩡한 사람이 창조과학에 기대고 있다.
- 성서 문자주의(근본주의 신앙), 초자연주의 신관도 과감히 수정해야 한다.
-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하나님의 언어를 문자적 의미로 해석하면 안 된다.
☞ “저 친구 곰이야”하면 문자 그대로 곰이 아니라, 그런 특징이 있다는 뜻이다.
□ 진리에는 사실적 진리와 의미의 진리가 있다.
- 형이하학과 형이상학적인 진리가 있고, 세상 사물과 하나님에 관한 진리도 있다.
- 이성과 신앙의 진리, 자연과 인생의 진리 등 다양하다.
- 종교의 세계에서도 오히려 의미의 진리, 신앙의 진리가 사실의 진리보다 중요하다.
- 동정녀마리아와 성육신은 사실적 진리보다는 의미적 진리로 이해해야 한다.
☞ 예수는 본인뿐만 아니라 믿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했다.
□ 권력화된 교리는 다양한 해석을 용납하지 않고 있다.
- 그래서 이단논쟁, 사상탄압, 종교전쟁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 신화적 이야기이든 교리든 결코 허구가 아니라, 신앙적 진리가 들어 있다.
-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그의 뜻을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보편적 진리를 표현한 것이다.
- 우리는 사실이라는 것을 표피, 객관, 체험, 환상에서 포착되는 경우도 많다.
☞ 예수에 대해 ‘지금 비가 온다’ 차원의 사실보다 그 너머의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 성육신(成肉身)
- 신적인 존재가 인간 육체 안으로 들어왔다.
-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 (요 1;14)’를 한 자로 표시한 것이 성육신이다.
☞ 성육신은 聲肉身이나 言肉身이 아니라 成肉身이다.
□ 어느 왕비의 슬픔 ★★★
- 왕비가 사고로 한쪽 눈을 잃어 버렸다.
- 왕비는 왕의 사랑을 잃을까 근심에 쌓여 있었는데, 왕비를 지극히 사랑하던 왕이 묘안을 냈다.
- 자신도 한쪽 눈을 뽑은 다음 왕비에게 “보시오 나도 당신과 같아졌소”라고 했다.
☞ 성육신은 하나님이 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셔서 인간과 같아진 사건이다.
□ 교역자는 사실적 진리보다 그 뜻과 의미를 가르쳐야 한다. ★★★
- 그러면 자신의 존재와 삶에 결정적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
- 오히려 사실적 진리의 문제도 더 진지하게 다가갈 수 있다.
- 무조건 믿으라고 하지 마라.
- 성서는 과학적 사실이 지닌 보편타당성이 없고, 수학적 진리 같은 필연성도 없으며, 인생론과 같은 보편성도 없기 때문이다.
☞ 그런데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묻지마 신앙을 강요함은 잘못이다.
□ 기독교인은 이중적 진리를 가질 수 밖에 없다. ★★★
- 다윈의 진화론도 수긍하면서 하나님의 창조론을 신봉한다.
- 과학과 산업의 발달로 상상 못 할 풍요를 누리며, 인류역사나 신의 존재가 무의미해져서
커다란 정신적 공허감을 느끼고 있다.
- 전염병과 자연재해는 대부분 극복하기에 초자연적 능력을 믿지 않게 되었다.
- ‘영적 존재와 힘보다 인간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막스 베버의 ‘탈주술화 현상’)
☞ 대신 온갖 물질적 풍요와 장수를 누리나, 이런 이기적인 인간중심주의가 필연적이라, 삶의 고통이 증가함도 사실이다.
□ 현대인들은 의미와 가치의 기준이 변화되었다. ★★★
- 물질적 풍요와 장수가 초자연적 신이나 신령을 사라지게 해 정신적으로 삭막하게 되었다.
- 현대인들의 의미는 자기 입맛대로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의미일 뿐이다.
- 의미 있는 객관적 가치가 없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만 가치가 될 수 있다.
- 내가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것이 끝이고 자기의 진리가 되어 버렸다.
☞ 안된다는 설득은 무력하고 필요 없어졌다.
□ 파스칼의 도박론- 신의 존재에 배팅하면 손해 볼 일이 없다.
□ 교회에 갇힌 하나님과 예수 ★
- 신앙의 진리는 불행하지만 신앙의 진리를 이해하는 시각과 사고는 항상 변해야 한다.
- 하나님과 예수를 교회의 아성과 편협 된 전통의 굴레 속에 가두어 버렸다.
-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타성에 벗어난다는 것은 죽음만큼 힘들고 괴롭다.
- 그래서 한국기독교는 죽는 것이 참으로 사는 것(死卽生)이라고 자성하고 있다.
3. 한국사람 치고 유교윤리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 없다.
- 유교는 불교와 기독교 사이에 완충역할을 하고 있다.
- 유교는 종교 차원을 넘어 국민을 하나로 묶는 시민종교 기능이 있다.
□ 한국교회의 배타성과 공격적 선교열은 어디서 왔는가?
- 예수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했지만, 진리란 자칫하면 매우 위험하다.
- 진리에 확신이 지나치면 자유는커녕 진리의 이름으로 파괴를 정당화할 수 있다.
- 기독교가 로마, 이집트, 그리스를 흡수하는 과정에 강해졌고 중세를 지배하는 종교가 되면서 사상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종교가 된 것이다.
- 그 결과 모든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로 보는 평등주의가 고취되며 배타주의를 낳게 되었다.
□ 도전 받는 유일신 신앙 ★★★
- 창조주와 피조물을 엄격하게 구분해 자연에 대한 경외심 상실로 환경파괴를 초래하고 있다.
- 유일신은 가부장적 권위를 낳았다. 그래서 기독교는 남성중심이 되었다.
- 그래서 인류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 역사가 많다.
☞ 한국에선 굳이 ‘하나’에다 부자연스레 ‘님’자를 붙여 전통신앙인 하느님과 차별화 했다. ★
□ ‘하나’의 참뜻은★★★★★
- 하나는 숫자 하나가 아니다. 숫자를 초월하신 말이다.
- 하나님을 인간처럼 생각하는 인격신관을 가진 신앙인들은 초인처럼 생각한다.
- 하나는 하나님의 무한성, 무차별성을 가르친다. 무소 부재한 분이시다.
- 마음대로 컨트롤하고 언어로 가둘 수 있는 하나님은 참이 아니라 우상이다.
☞ ‘하나’는 무한의 이름이다. 모든 것을 포괄 포용하는 광대무변의 무한자이다. 결국 모든 것을 품는 무한히 넓고 열린 분이 하나님이란 뜻이다.
□ 관련성경
- 만물이 그로부터 그를 통해서 그리고 그를 향해 존재하는 (롬 11:36)
- (우리가 그 안에)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는 (사 17:28)
-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 (신 6:4)
□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정을 때야 한다. ★★★
- 하나님이냐 세상이냐, 치열한 영혼의 고투경험 없이는 신이 뭔지 모른다.
- 영성의 大家들은 세상적인 것이 영혼을 잡다하게 만든다고 했다.
- 하나만 사랑하지 않으면 돈의 노예, 사물의 노예로 전락한다고 했다.
☞ 사랑은 이루어질 때 보다 그리워할 때가 더 행복하다. ★★★
죽어서 하나님과 대면할 때까지 이 갈망을 그칠 수 없다. 그래서 믿음이 행복한 것이다.
□ 한국교회에는 죄 사함 받았다고 희색 만연한 성도가 많다. ★★★
- 소위 은혜 받았다고 떠들어대는 사람일수록 더 그런 것 같다.
- 대속신앙은 이런 파렴치한 죄인 아닌 죄인을 양산하기 쉽다.
- 그리스도인들의 죄는 인간에게 짓고 용서는 하나님께 받았다고 떠들어 비난 받는 사람들이다.
-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마 16:24) 이 말씀을 심각히 여기지 않는다.
☞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하고 뻔뻔스레 사느니 평생 죄의식을 갖고 사는 게 맞다. (영화 ‘밀양’의 핵심주제)
□ 예수는 결단코 하나님 자신은 아니다. ★★★
- “누가 나(예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자가 없느니라.”
- 예수를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았기 때문에 유대교, 이슬람에서 유일신을 배반했다고 비난한다.
-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신분을 통해 하나님을 더 확실히 깊게 알아가는 매개이다.
- 예수는 불의한 세상을 너무나 투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천국운동을 펼치다 보니 로마정치와 유대종교 권력에 의해 십자가형을 받은 것이다.
☞ 기독교는 예수를 너무 높이고 신격화하여 맹목적인 예수숭배 종교로 변해 버렸다.
□ 기독교 신앙은 종말론적 신앙으로 출발했고, 지금도 그래야 한다. ★
- 하지만 현재 기독교는 종말의식을 상실하고 있다.
- 기독교는 신음하던 한 민족에게 출현한 예수라는 ‘종말예언자’에 의해 시작된 종교이다.
- 예수가 펼친 종말운동은 ‘하나님이 친히 통치하는 하나님 나라가 곧 임한다.’이다. 복음이다.
- 고난의 삶이 폭압의 시대가 끝나고 새 세상이 온다는 희망의 징표였다.
□ 현대 기독교가 당면한 가장 근본적인 위기는? ★★★
- 현실에 안주하고, 이대로가 좋다는 것이다. 이런 기독교는 예수와 무관하다.
-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가난한 마음을 상실했고, 위기, 종말의식을 망각한 것이 위기다.
- 배부르고 등 따시게 되자 현실과 타협하고 삶에 영합하게 된 것이다.
- 세상이 아직 천국이 아니라 불의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 천국을 갈망하는 겸손한 영성을 잃어버렸다.
□ 교회가 천국이고, 교인되면 영생이 보장되는 줄 착각하고 있다. ★★★
- 교회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예수자신을 복음으로 전하는 종교로 둔갑한 곳이 많다.
- 천국운동 대신 교회의 끝없는 확장을 추구하는 집단이 되어 버렸다.
- 유례없는 물질의 축복은 오만한 승리주의와 독선적 배타주의가 판을 치게 했다. (재테크)
- 예수와 하나님, 교회와 하나님 나라는 분리할 수는 없지만 결코 동일시나 혼동해서는 안 된다.
□ 회개하라. 하늘 나라가 임박했다. ★★★
- 기독교는 예수의 이 메시지와 더불어 시작한 종교이다. 기독교의 핵심이 들어 있다.
- 회개는 현재 삶의 방식을 과감히 청산하고 끊고 부정하라는 촉구이다.
-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은 결코 천국의 복음에 진지하게 귀 기울일 수 없다.
- 그래서 예수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천국이 저들의 것이다’라고 했다.
☞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속하지만 세상 것이 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 누구나 한번쯤은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다. ★★★
- 비록 자그마한 위기일지라도 오히려 삶에는 약이 된다.
- 밋밋하고 평탄한 삶보다 굴곡이 있고 감당할만한 도전과 시련이 오히려 활기가 될 수 있다.
- 시련이 없으면 성취의 기쁨도 없고, 고통이 없으면 행복도 느끼지 못한다.
- 고통 없는 세계는 하나님에게도 불가능한 일이고, 그것을 바라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 생명체가 존재하는 한 하나만 있고 다른 하나는 없는 세계는 있을 수 없다. ★
□ 행복과 불행은 늘 같이 가는 법이다. ★★★
- 배고픔이 없으면 먹는 행복을 못 느끼고, 대패한 쓰라림을 모르면 승리의 기쁨도 모른다.
- 항시 날씨가 좋으면 과일도 맛이 없다.
- 가끔의 패배, 좌절, 시련은 인생을 더 풍요롭고 성숙하게 만든다.
- 하나님은 감당 못할 시련을 안 준다 했지만 누구에게나 그렇지 않다.
- 죽음의 문턱에 다녀온 사람은 살아있음 자체가 축복이라고 한다.
☞ 건강한 사람은 자기 몸을 엄청나게 학대하며 평생 아프지 않을 것처럼 살아간다.
절망의 위기를 믿음으로 극복한 사람은 남 모르는 축복을 경험하고 오히려 더 행복하다.
□ 병이 낫는 것 자체가 신앙적 의미의 구원은 아니다.
- 많은 사람들이 구별하지 못하고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를 믿는다.
- 병의 치유가 영생을 누리는 구원이 아니다.
- 단지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로 들어가는 계기가 되지 그 자체가 구원은 아니다.
□ 기복신앙은 기적신앙과 밀접하고 같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기도만으로, 병원에 안 가도 병이 났고, 공부 안 해도 대학에 붙는다면 그것은 기적신앙이다.
- 기적이 없다고 상처 받는 것이나, 기적신앙의 간증을 듣고 은혜 받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 기적이 신앙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앙이 기적을 만든다는 진리를 기억하자.
- 부활하신 예수의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고 믿은 도마에게 예수는 “너는 나를 보았기에 믿느냐? 보지 않았음에도 믿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했다.
☞ 진정하고 순수한 신앙은 기복과 기적에 연연하지 않는다.
□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 ★★★
- 진정으로 자기를 비우고 포기하고 자신의 전 존재와 삶을 맡기는 순수신앙이어야 한다.
- 그저 살려는 욕심이나 이기적 목적을 위해 매달린다면 하나님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다.
- 기도도 자기 뜻을 접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된다. 하나님의 뜻을 맞추는 것이다.
- 죽음을 면해 달라는 기도도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해야 한다. ★
☞ ‘살든지 죽든지 주의 뜻대로 하소서!’ 이런 모험의 믿음이야말로 순수한 신앙이다. (기도법)
□ 미래란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것이다. (앨빈 토플러) ★★★
- 예측 가능하거나 증거가 있는 것은 믿음이 필요 없다는 말과 같다.
- 신앙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미래를 바라는 희망이고, 자신을 맡기는 용기와 결단의 믿음이다.
- 하나님의 미래는 인간의 예측이나 인간의 노력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 가장 위대한 덕목은 사랑이나 겸손보다도 자기를 철저히 비우는 것이다.
□ 내가나인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다. (고전 15:9~11) ★★★
-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다면 행복하고 성숙하고 성공한 사람이다.
- 반면에 모두 자기 힘으로 되었다고 뽐내는 사람은 덜 된 사람이다.
- 죽을 때까지 감사를 모르며 경쟁과 투쟁 속에 피곤하게 살 사람이다.
- 신앙인은 과거나 현재 모두를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며 감사와 겸손한 사람이어야 한다.
☞ 모두 순전히 우연과 행운, 아니면 자기 힘으로 성공했다 생각하는 사람은 비신앙인이다.
□ 여행 해 보면 우리나라만큼 잘 사는 나라도 드물다. ★★★★★
- 불과 20년 전만해도 미국에서 자리잡은 동포가 부러웠다.
- 요즘은 이민 가려는 사람이 별로 없다. 해외근무도 삶의 풍요를 위해 못사는 나라를 선호한다.
- 나라가 이만큼 잘 사니까 그렇지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
- 여건, 기회, 재능, 건강, 많은 멘토, 사회, 국가, 하나님이 지금 나를 지탱해 주었기 때문이다.
☞ ‘무엇 하나 ‘나’ ‘내 것’이라 주장하며 살 사람이 없다,’ (불교의인연) (재테크, 부자마인드, 겸손한 부자)
□ 하나님의 은총은 특별한 것도 먼 곳에 있는 것도 아니다
- 보는 눈만 있으면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며 은총이다.
- 볼 수 있는 신앙의 눈만 있으면 풀 한 포기에도 존재하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다.
□ 기적적으로 살아났거나, 죽음에 문턱에 있는 사람은 ★★★★★
- 그들이 느끼는 세계와 눈에 비친 사물이 어떻게 보일까?
- 아직도 살아있다는 사실만이라도 정말 순수한 진심으로 감사하게 여길 것이다.
- 매 순간 새롭고 소중하고 고마우며 누굴 원망하고 불평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 우리는 언제나 죽음이 가져다 줄 엄청난 축복을 누릴 수 있다. 고통을 겪지 않고도……
☞ 용서하고 화해하고 난 뒤에 감사하며 죽을 수 있다면 가장 행복하고 성공한 사람이다. ★(노인강의)
□ 가장 만족한 신앙은 ★★★
-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장차 나의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 이 고백의 찬양을 평소에도 부를 수 있고, 죽음이 임박해서도 진심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이다.
☞ 그이상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노인강의)
□ 하나님의 첫째 아들은 아담이고 둘째는 예수이다.
- 첫째는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교만의 죄를 지었고,
- 둘째는 죄를 지을 수 있음에도 죄짓지 않은 효자였다.
☞ 그리스도는 다 된 인간이고, 우리는 되어가는 그리스도이다. (신학자 칼 라너)
□ 종교의근본 사명은 자신과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있다.
- 평생 신앙생활을 해도 자기와 세상을 변화시킨 경험이 없다면 죽은 신앙이다.
-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변화를 완성하지는 못한다.
- 그 변화는 죽음을 극복하는 믿음이 있기에 도덕이나 사회운동과 차원이 다르다.
- 우리는 늘 죽음을 의식하며 살기에 죽음은 삶의 일부라 할 수 있다.
☞ 우리 삶은 죽음으로부터 꾸어온 돈이며, 잠이 매일 지불하는 이자다. (쇼펜하우어)
□ 부활신앙의 바른 이해
- 별로 의롭게 살지 않아도 예수만 믿었다고 천국에 가고
,- 자기 잘못도 아닌데 미 복음지역에 태어났다고 지옥이 간다.
- 이런 불공정한 내세관을 가지고 기독교는 2천년간 버텨왔다.
- 이제 이런 내세관은 과감히 폐기하거나 수정할 때가 되었다.
☞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선하시고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 지옥에 입구 팻말 (단테의 신곡 ‘지옥편’)
- 여기 들어오는 자는 희망을 가지지 말지어다.
☞ 중세인들이 무척 두려워 한 말이다.
□ 지옥의 영벌이 존재한다면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 ★
- 지은 악이 아무리 커도 영원한 벌을 받을만한 죄는 없을 것이다.
- 선이 개인의 공로만이 아니듯 악도 한 개인의 책임만은 아니다.
- 600만 유대인을 죽인 히틀러도 그것을 방조한 독일국민과 협조한 서방국가들이 있었다.
- 그렇다고 악인이나 선인이 똑 같은 사후에 처한다는 것은 인생과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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