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아직도 교회 다니십니까' 책 요약

스카이7 2018. 2. 17. 23:38

 

아직도 교회 다니십니까.

길희성 / 대한기독교서회 펴냄(2015)/ 2015.10.6 이종태 행복경영연구소장 요약

 

저자 길희성은

- 평생 예수를 믿고 살아왔으며 신학, 종교학, 철학을 두루 공부하면서 교회에서 설교도 제법 많이 한 사람이다.

- 서울대(철학), 예일대(신학석사), 하버드(비종교학박사)에서 공부를 했다.

- 교수 역임지는 미국 세인트 올라프대, 서울대, 서강대이다.

- 현재 서강대 명예교수이자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이다.

 

묻지마 신앙이 판치고 있다. ★★★

- 가르침이 납득이 안가다 보니 무조건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신앙이 참다운 신앙이라 간주되고 있다.

- 맹종이 맹신을 낳고, 맹신은 잘못된 확신을 낳으며, 그릇된 확신이 광신을 낳는다.

- 정직한 신앙은 묻고 의심하고 고민하는 신앙에서 온다.

교회생활이 사회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은 잘못이다.

 

목회자중에 자기도 믿지 못하는 말을 할 수 있다.

- 오늘의 세계와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과 소통이 되지 않는 메시지는 죽은 것이다.

 

일요일에갈 곳 없는 사람이 가는 곳이 교회이다.

- 아니면 삶이 너무 무겁고 버거워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찾는 곳이다.

- 어릴 땐 지옥 간다는 협박에 겁이 나서 갔으나 누가 지옥을 믿는가?

- 또 누가 교회에 다녀야만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가?

- 만약 교회에 안 다녀서 지옥에 간다면 세계 인구 대다수가 지옥에 갈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믿겠는가?

이런 배타적인 구원관이나 소수만 구원받는 무자비한 하나님이 지성인들에게 기독교를 외면하게 만드는 큰 원인이 되고 있다.

 

교회를 멀리하는 이유

- 몸집 불리고, 무허가 신학교의 저질목사 양산, 헌금강요와

- 거북할 정도로 유치하고 저질스러운 설교에

- 목사나 장로의 독선과 권위주의 불투명한 헌금 사용처에다

- 감싸주고 품기보다 단죄하고 군림하는 엄한 하나님, 전제군주의 하나님, 비상식적인 기적들,

자유, 책임, 사랑, 정의 등 좋은 것은 하나님께 돌리고 인간의 죄악만 들먹이는 신앙이 초신자에게는 불편한 점들이다.

 

요즘 서울 강남의 유명사찰의 신자 분포 ★★★

- 새로운 신자는 1/3, 기존신자 1/3, 개신교와 천주교에서 개종한 신자 1/3이다.

- 불경은 합리적이면서 심오한 지혜의 가르침이 있다는 인상을 준다.

- 적어도 절에 가면 마음만은 편안하게 해 주는 강점이 있다.

 

맹목적인 예수 숭배가 가장 큰 문제다.

- 예수 숭배를 청산하려면 예수 자신의 가르침을 되찾아야 한다.

- 예수를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 떠받들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일은 그만해야 한다.

- 예수를 저 높은 곳에 두고 우러러 섬기는 대상이 아니라, 그의 신앙, 그의 삶을 따라야 한다.

- 기독교 창시자인 예수의 비전을 품고 인격을 흠모하고 가르침에 따라야 한다.

현대 기독교는 예수에 대한 신앙으로부터 예수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

 

예수에 대한 신앙과 예수의 신앙은 무엇인가? ★★★

-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중심의 신앙을 가진 사람임을 기억하자.

- 하지만 예수를 하나님 자리에 올려 신성시하는데 많은 문제가 되고 있다.

-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불렀다. 하나님을 따르고자 자신을 비운 존재이다.

- 철저하게 자신의 힘을 뺐기에 하나님의 힘으로 충만했다.

예수님 자신은 결코 사람들에게 자기를 믿으라고 하지 않았다.

 

율법 중에 어느 것이 제일 큰 계명이냐에 대한 예수님의 답은?

-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

- 만약 예수님이 요즘 태어났다면 자연사랑도 포함했을 것이다.

 

항변 한번 못하고 수치를 감내하는 교계

- 1990년대, 권사들의 전쟁(옷 로비 사건) 때부터였다.

- 한국 기독교가 망할만하면 망해야 하고, 흥할만하면 흥할 것이다.

- 단지 나 자신의 하나님 신앙과 예수라는 존재에 고심할 뿐이다.

- 개독교라고 해도 변명이나 항변하고 싶지 않고, 들어도 싸다. 오히려 속 시원하다고 한다.

교회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나 억압이 크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을 대하는 태도에 근본 문제가 있다.

- 그토록 많은 시간에 말도 안 되는 저질설교를 들으며 에너지를 쏟고 있을까?

- 대다수가 기독교 진리가 좋고, 수긍하고, 사랑해서 교회를 다니는 게 아니다.

- 대다수가 그렇지 않는데도 교회를 다닌다. 만족하는 사람은 만나기 어렵다.

- 순수한 영적 욕구와 불순한 인간적 욕망이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 아니고, 공존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부차적목적이 본래목적보다 앞서고 부차적관심 때문에 어영부영 다니는 경우가 많다.

 

교회 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 심심해서, 친구 따라, 유명 인사들을 보려고, 사업에 도움 받으려고, 세포조직의 압박으로,

- 교회에서는 쉽게 인정받으니까, 인간관계와 나오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 성가대 음악이 좋아서, 교회건물이 웅장해서, 가족의 요구로……

실로 다양하고 흥미로운 답이 나올 것이다.

 

고민많고 불만 많던 시기에는 보수적, 청교도적 설교는 안 들린다.

- 가장 많은 설교가 우리 죄를 대속하려 십자가에 피 흘리며 죽으심이다.

- 십자가 설교는 아무리 세뇌되어도 제일 지루하고, 이 믿음이 없어도 신앙생활에 문제가 없다.

- 뻔한 이야기에 위선적이 되는 것은 복음주의 보수신앙의 문제임을 나중에 알았다.

그래도 공동체 생활이 재미있고, 배우자를 만나는 사람도 있으니 그리 손해 볼 일도 아니다.

 

한국교회 문제는 오히려 신앙이 너무 넘치고 뜨거워서 탈이다. ★★★

- 본질적 문제는 도적적 타락이나 신앙의 부족 같은 데 있기보다는, ★★★

설교를 젊은 세대와 교육받은 사람들이 알아듣고 수긍할만한 언어로 전달하지 못하는데 있다.

- 정통 신앙의 이름으로 인간의 상식과 이성을 무시하고 의심을 금기시하기 때문이다.

 

묻지마 신앙이 판치고 있다. ★★★

- 성경, 가르침, 교리가 납득이 안가도 무조건 믿으라고 한다.

-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게 참다운 신앙이라 간주된다.

- 우리나라 대다수 교회의 모습이다. 강사가 모르거나 의심하고 전하면 전혀 전달이 안 된다.

이제는 머리로 납득할 수 있고, 가슴으로도 사랑할 수 있는 진리를 제시해야 한다.

 

신앙생활의 고민은 무엇인가?

- 의심이 들어도 그냥 묻어두지 않으면 신앙부족, 성령은사 없음이라 생각해 버린다.

- 그러니 좋든 싫든 그냥 교회에 다닌다.

저질 기복신앙을 넘을 수 있는 대안적 신앙의 이해를 제시 못하고 있다.

 

신앙 따로 사회생활 따로를 조장하고 있다.★★★

- 생각하지도 않고 묻지도 않는 신앙은 이중생활을 조장할 수 밖에 없다.

- 매우 편리한 신앙이지만 진지한 신앙은 아니다.

- 이성과 지성을 무시하고 양심과 양식을 도외시하는 신앙은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 이성이 신앙의 잣대는 아니나, 이성을 반하여 억지로 믿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신앙진리는 이성을 초월하는 신비이지, 이성에 못 미치는 미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학도 배움과 현장은 완전 다르다.

- 신학교에서 배운 신학 지식은 말짱 헛것이라 한다.

- 결국 선배목사들 하는 대로 무대포로 밀고 나가야 한다.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가슴으로도 사랑하지 못한다.

 

좋은 믿음은 가시적인 행위가 아니다. ★★★★★

- 인간 내면의 태도, 인격이 지닌 어떤 성품이다.

- 믿음은 정통교리와 숱한 기적이야기들을 그대로 믿는 것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 지적 수용은 지적 수긍과 다르다. 교회는 지적 수용만 요구한다. ★★★

- 순종과 복종, 저주의 압력에 밀려 평생 의심을 품고 살고 있다면 신앙생활이 아니다.

지적 수긍이 되지 않아 수용을 못하면 신앙 없는 사람으로 간주되어 매도 당한다.

 

신앙의 일차적 행위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다.

- 성경이나 교리에 동의하고, 수용하는 행위가 우선이 아니다.

- 자신만을 믿거나, 물질,, 명예, 권력을 믿고 숭배하는 마음을 버려라.

-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마음의 태도와 행위가 믿음이다.

- 인간은 하나님을 배신하지만, 신실한 하나님은 끝까지 신의를 지키는 분이다.

불신은 지적 의심 이전에 신뢰의 결핍 내지 부족이다.

 

믿음이란 ★★★

- 예수의 십자가 보혈이라는 교리적 진술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행위라기 보다는

- 그 진술 배후에 있는 더 근본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은혜를 신뢰하는 믿음이다.

- 신뢰는 지적 행위이기보다는 감정과 의지의 문제다.

- 신앙 깊이는 그가 정말 물질적 축복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신뢰하는가 보면 안다.

방언을 강요하거나, 공포저주와 불안으로 겁주어 신앙으로 유도하는 건 믿음이 아니다.

 

진리라 고집하며 주입하려고만 한다.

- 억지로라도 믿는 체하거나 찜찜해도 무시하는 게 융통성이라 선전하고 강요한다.

-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선물인 지성과 상식을 포기하는 신앙은 진정한 것이 아니다.

- 신앙은 상식과 지성의 희생이 아니라 이전의 삶을 포기하고 자신의 방식을 과감히 청산하는 희생이다.

 

그리스 철학, 과학, 동양종교와 기독교의 만남 ★★★

1.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의 만남은 고대와 중세를 통해 성공적으로 극복했다.

- 이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톨릭 신학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 만약 초기에 그리스, 로마 철학의 도움이 없었다면 유대교의 한 분파로 소멸했을 것이다.

- 불행히도 개신교는 서구 전통의 고전적인 형이상학적 영성을 흡수하지 못했다.

결국 한국 개신교는 좁고 답답한 근본주의 신앙에 머물고 있다.

 

2. 근대과학과 기독교 신앙의 만남

- 초등학교만 나와도 초자연적 기적에 대한 믿음이 설 자리를 앗아갔다.

- 과학은 사실의 언어에 익숙하게 하고, 사실의 진리를 전부로 여긴다.

- 문제는 가르치는 부류의 사람(목사 등)도 똑 같은 의문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 의심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묻지마 신앙만 남게 된다.

믿지 못하면 믿음이 없다고 매도한다. 그래서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

 

사이비과학과 사이비 신학으로는 안 된다. ★★★

- 신앙을 이해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 고도의 과학 교육을 받은 멀쩡한 사람이 창조과학에 기대고 있다.

- 성서 문자주의(근본주의 신앙), 초자연주의 신관도 과감히 수정해야 한다.

-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하나님의 언어를 문자적 의미로 해석하면 안 된다.

저 친구 곰이야하면 문자 그대로 곰이 아니라, 그런 특징이 있다는 뜻이다.

 

진리에는 사실적 진리와 의미의 진리가 있다.

- 형이하학과 형이상학적인 진리가 있고, 세상 사물과 하나님에 관한 진리도 있다.

- 이성과 신앙의 진리, 자연과 인생의 진리 등 다양하다.

- 종교의 세계에서도 오히려 의미의 진리, 신앙의 진리가 사실의 진리보다 중요하다.

- 동정녀마리아와 성육신은 사실적 진리보다는 의미적 진리로 이해해야 한다.

예수는 본인뿐만 아니라 믿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했다.

 

권력화된 교리는 다양한 해석을 용납하지 않고 있다.

- 그래서 이단논쟁, 사상탄압, 종교전쟁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 신화적 이야기이든 교리든 결코 허구가 아니라, 신앙적 진리가 들어 있다.

-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그의 뜻을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보편적 진리를 표현한 것이다.

- 우리는 사실이라는 것을 표피, 객관, 체험, 환상에서 포착되는 경우도 많다.

예수에 대해 지금 비가 온다차원의 사실보다 그 너머의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성육신(成肉身)

- 신적인 존재가 인간 육체 안으로 들어왔다.

-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 (1;14)’를 한 자로 표시한 것이 성육신이다.

성육신은 聲肉身이나 言肉身이 아니라 成肉身이다.

 

어느 왕비의 슬픔 ★★★

- 왕비가 사고로 한쪽 눈을 잃어 버렸다.

- 왕비는 왕의 사랑을 잃을까 근심에 쌓여 있었는데, 왕비를 지극히 사랑하던 왕이 묘안을 냈다.

- 자신도 한쪽 눈을 뽑은 다음 왕비에게 보시오 나도 당신과 같아졌소라고 했다.

성육신은 하나님이 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셔서 인간과 같아진 사건이다.

 

교역자는 사실적 진리보다 그 뜻과 의미를 가르쳐야 한다. ★★★

- 그러면 자신의 존재와 삶에 결정적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

- 오히려 사실적 진리의 문제도 더 진지하게 다가갈 수 있다.

- 무조건 믿으라고 하지 마라.

- 성서는 과학적 사실이 지닌 보편타당성이 없고, 수학적 진리 같은 필연성도 없으며, 인생론과 같은 보편성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묻지마 신앙을 강요함은 잘못이다.

 

기독교인은 이중적 진리를 가질 수 밖에 없다. ★★★

- 다윈의 진화론도 수긍하면서 하나님의 창조론을 신봉한다.

- 과학과 산업의 발달로 상상 못 할 풍요를 누리며, 인류역사나 신의 존재가 무의미해져서

커다란 정신적 공허감을 느끼고 있다.

- 전염병과 자연재해는 대부분 극복하기에 초자연적 능력을 믿지 않게 되었다.

- ‘영적 존재와 힘보다 인간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막스 베버의 탈주술화 현상’)

대신 온갖 물질적 풍요와 장수를 누리나, 이런 이기적인 인간중심주의가 필연적이라, 삶의 고통이 증가함도 사실이다.

 

현대인들은 의미와 가치의 기준이 변화되었다. ★★★

- 물질적 풍요와 장수가 초자연적 신이나 신령을 사라지게 해 정신적으로 삭막하게 되었다.

- 현대인들의 의미는 자기 입맛대로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의미일 뿐이다.

- 의미 있는 객관적 가치가 없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만 가치가 될 수 있다.

- 내가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것이 끝이고 자기의 진리가 되어 버렸다.

안된다는 설득은 무력하고 필요 없어졌다.

 

파스칼의 도박론- 신의 존재에 배팅하면 손해 볼 일이 없다.

 

교회에 갇힌 하나님과 예수

- 신앙의 진리는 불행하지만 신앙의 진리를 이해하는 시각과 사고는 항상 변해야 한다.

- 하나님과 예수를 교회의 아성과 편협 된 전통의 굴레 속에 가두어 버렸다.

-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타성에 벗어난다는 것은 죽음만큼 힘들고 괴롭다.

- 그래서 한국기독교는 죽는 것이 참으로 사는 것(死卽生)이라고 자성하고 있다.

 

3. 한국사람 치고 유교윤리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 없다.

- 유교는 불교와 기독교 사이에 완충역할을 하고 있다.

- 유교는 종교 차원을 넘어 국민을 하나로 묶는 시민종교 기능이 있다.

 

한국교회의 배타성과 공격적 선교열은 어디서 왔는가?

- 예수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했지만, 진리란 자칫하면 매우 위험하다.

- 진리에 확신이 지나치면 자유는커녕 진리의 이름으로 파괴를 정당화할 수 있다.

- 기독교가 로마, 이집트, 그리스를 흡수하는 과정에 강해졌고 중세를 지배하는 종교가 되면서 사상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종교가 된 것이다.

- 그 결과 모든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로 보는 평등주의가 고취되며 배타주의를 낳게 되었다.

 

도전 받는 유일신 신앙 ★★★

- 창조주와 피조물을 엄격하게 구분해 자연에 대한 경외심 상실로 환경파괴를 초래하고 있다.

- 유일신은 가부장적 권위를 낳았다. 그래서 기독교는 남성중심이 되었다.

- 그래서 인류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 역사가 많다.

한국에선 굳이 하나에다 부자연스레 자를 붙여 전통신앙인 하느님과 차별화 했다.

 

하나의 참뜻은★★★★★

- 하나는 숫자 하나가 아니다. 숫자를 초월하신 말이다.

- 하나님을 인간처럼 생각하는 인격신관을 가진 신앙인들은 초인처럼 생각한다.

- 하나는 하나님의 무한성, 무차별성을 가르친다. 무소 부재한 분이시다.

- 마음대로 컨트롤하고 언어로 가둘 수 있는 하나님은 참이 아니라 우상이다.

하나는 무한의 이름이다. 모든 것을 포괄 포용하는 광대무변의 무한자이다. 결국 모든 것을 품는 무한히 넓고 열린 분이 하나님이란 뜻이다.

 

관련성경

- 만물이 그로부터 그를 통해서 그리고 그를 향해 존재하는 (11:36)

- (우리가 그 안에)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는 (17:28)

-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 (6:4)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정을 때야 한다. ★★★

- 하나님이냐 세상이냐, 치열한 영혼의 고투경험 없이는 신이 뭔지 모른다.

- 영성의 大家들은 세상적인 것이 영혼을 잡다하게 만든다고 했다.

- 하나만 사랑하지 않으면 돈의 노예, 사물의 노예로 전락한다고 했다.

사랑은 이루어질 때 보다 그리워할 때가 더 행복하다. ★★★

죽어서 하나님과 대면할 때까지 이 갈망을 그칠 수 없다. 그래서 믿음이 행복한 것이다.

 

한국교회에는 죄 사함 받았다고 희색 만연한 성도가 많다. ★★★

- 소위 은혜 받았다고 떠들어대는 사람일수록 더 그런 것 같다.

- 대속신앙은 이런 파렴치한 죄인 아닌 죄인을 양산하기 쉽다.

- 그리스도인들의 죄는 인간에게 짓고 용서는 하나님께 받았다고 떠들어 비난 받는 사람들이다.

-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16:24) 이 말씀을 심각히 여기지 않는다.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하고 뻔뻔스레 사느니 평생 죄의식을 갖고 사는 게 맞다. (영화 밀양의 핵심주제)

 

예수는 결단코 하나님 자신은 아니다. ★★★

- “누가 나(예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자가 없느니라.”

- 예수를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았기 때문에 유대교, 이슬람에서 유일신을 배반했다고 비난한다.

-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신분을 통해 하나님을 더 확실히 깊게 알아가는 매개이다.

- 예수는 불의한 세상을 너무나 투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천국운동을 펼치다 보니 로마정치와 유대종교 권력에 의해 십자가형을 받은 것이다.

기독교는 예수를 너무 높이고 신격화하여 맹목적인 예수숭배 종교로 변해 버렸다.

 

기독교 신앙은 종말론적 신앙으로 출발했고, 지금도 그래야 한다.

- 하지만 현재 기독교는 종말의식을 상실하고 있다.

- 기독교는 신음하던 한 민족에게 출현한 예수라는 종말예언자에 의해 시작된 종교이다.

- 예수가 펼친 종말운동은 하나님이 친히 통치하는 하나님 나라가 곧 임한다.’이다. 복음이다.

- 고난의 삶이 폭압의 시대가 끝나고 새 세상이 온다는 희망의 징표였다.

 

현대 기독교가 당면한 가장 근본적인 위기는? ★★★

- 현실에 안주하고, 이대로가 좋다는 것이다. 이런 기독교는 예수와 무관하다.

-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가난한 마음을 상실했고, 위기, 종말의식을 망각한 것이 위기다.

- 배부르고 등 따시게 되자 현실과 타협하고 삶에 영합하게 된 것이다.

- 세상이 아직 천국이 아니라 불의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천국을 갈망하는 겸손한 영성을 잃어버렸다.

 

교회가 천국이고, 교인되면 영생이 보장되는 줄 착각하고 있다. ★★★

- 교회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예수자신을 복음으로 전하는 종교로 둔갑한 곳이 많다.

- 천국운동 대신 교회의 끝없는 확장을 추구하는 집단이 되어 버렸다.

- 유례없는 물질의 축복은 오만한 승리주의와 독선적 배타주의가 판을 치게 했다. (재테크)

- 예수와 하나님, 교회와 하나님 나라는 분리할 수는 없지만 결코 동일시나 혼동해서는 안 된다.

 

회개하라. 하늘 나라가 임박했다. ★★★

- 기독교는 예수의 이 메시지와 더불어 시작한 종교이다. 기독교의 핵심이 들어 있다.

- 회개는 현재 삶의 방식을 과감히 청산하고 끊고 부정하라는 촉구이다.

-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은 결코 천국의 복음에 진지하게 귀 기울일 수 없다.

- 그래서 예수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천국이 저들의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속하지만 세상 것이 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다. ★★★

- 비록 자그마한 위기일지라도 오히려 삶에는 약이 된다.

- 밋밋하고 평탄한 삶보다 굴곡이 있고 감당할만한 도전과 시련이 오히려 활기가 될 수 있다.

- 시련이 없으면 성취의 기쁨도 없고, 고통이 없으면 행복도 느끼지 못한다.

- 고통 없는 세계는 하나님에게도 불가능한 일이고, 그것을 바라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생명체가 존재하는 한 하나만 있고 다른 하나는 없는 세계는 있을 수 없다.

 

행복과 불행은 늘 같이 가는 법이다. ★★★

- 배고픔이 없으면 먹는 행복을 못 느끼고, 대패한 쓰라림을 모르면 승리의 기쁨도 모른다.

- 항시 날씨가 좋으면 과일도 맛이 없다.

- 가끔의 패배, 좌절, 시련은 인생을 더 풍요롭고 성숙하게 만든다.

- 하나님은 감당 못할 시련을 안 준다 했지만 누구에게나 그렇지 않다.

- 죽음의 문턱에 다녀온 사람은 살아있음 자체가 축복이라고 한다.

건강한 사람은 자기 몸을 엄청나게 학대하며 평생 아프지 않을 것처럼 살아간다.

절망의 위기를 믿음으로 극복한 사람은 남 모르는 축복을 경험하고 오히려 더 행복하다.

 

병이 낫는 것 자체가 신앙적 의미의 구원은 아니다.

- 많은 사람들이 구별하지 못하고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를 믿는다.

- 병의 치유가 영생을 누리는 구원이 아니다.

- 단지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로 들어가는 계기가 되지 그 자체가 구원은 아니다.

 

기복신앙은 기적신앙과 밀접하고 같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기도만으로, 병원에 안 가도 병이 났고, 공부 안 해도 대학에 붙는다면 그것은 기적신앙이다.

- 기적이 없다고 상처 받는 것이나, 기적신앙의 간증을 듣고 은혜 받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 기적이 신앙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앙이 기적을 만든다는 진리를 기억하자.

- 부활하신 예수의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고 믿은 도마에게 예수는 너는 나를 보았기에 믿느냐? 보지 않았음에도 믿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했다.

진정하고 순수한 신앙은 기복과 기적에 연연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 ★★★

- 진정으로 자기를 비우고 포기하고 자신의 전 존재와 삶을 맡기는 순수신앙이어야 한다.

- 그저 살려는 욕심이나 이기적 목적을 위해 매달린다면 하나님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다.

- 기도도 자기 뜻을 접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된다. 하나님의 뜻을 맞추는 것이다.

- 죽음을 면해 달라는 기도도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해야 한다.

살든지 죽든지 주의 뜻대로 하소서!’ 이런 모험의 믿음이야말로 순수한 신앙이다. (기도법)

 

미래란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것이다. (앨빈 토플러) ★★★

- 예측 가능하거나 증거가 있는 것은 믿음이 필요 없다는 말과 같다.

- 신앙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미래를 바라는 희망이고, 자신을 맡기는 용기와 결단의 믿음이다.

- 하나님의 미래는 인간의 예측이나 인간의 노력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 가장 위대한 덕목은 사랑이나 겸손보다도 자기를 철저히 비우는 것이다.

 

내가나인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다. (고전 15:9~11) ★★★

-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다면 행복하고 성숙하고 성공한 사람이다.

- 반면에 모두 자기 힘으로 되었다고 뽐내는 사람은 덜 된 사람이다.

- 죽을 때까지 감사를 모르며 경쟁과 투쟁 속에 피곤하게 살 사람이다.

- 신앙인은 과거나 현재 모두를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며 감사와 겸손한 사람이어야 한다.

모두 순전히 우연과 행운, 아니면 자기 힘으로 성공했다 생각하는 사람은 비신앙인이다.

 

여행 해 보면 우리나라만큼 잘 사는 나라도 드물다. ★★★★★

- 불과 20년 전만해도 미국에서 자리잡은 동포가 부러웠다.

- 요즘은 이민 가려는 사람이 별로 없다. 해외근무도 삶의 풍요를 위해 못사는 나라를 선호한다.

- 나라가 이만큼 잘 사니까 그렇지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

- 여건, 기회, 재능, 건강, 많은 멘토, 사회, 국가, 하나님이 지금 나를 지탱해 주었기 때문이다.

무엇 하나 ’ ‘내 것이라 주장하며 살 사람이 없다,’ (불교의인연) (재테크, 부자마인드, 겸손한 부자)

 

하나님의 은총은 특별한 것도 먼 곳에 있는 것도 아니다

- 보는 눈만 있으면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며 은총이다.

- 볼 수 있는 신앙의 눈만 있으면 풀 한 포기에도 존재하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다.

 

기적적으로 살아났거나, 죽음에 문턱에 있는 사람은 ★★★★★

- 그들이 느끼는 세계와 눈에 비친 사물이 어떻게 보일까?

- 아직도 살아있다는 사실만이라도 정말 순수한 진심으로 감사하게 여길 것이다.

- 매 순간 새롭고 소중하고 고마우며 누굴 원망하고 불평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 우리는 언제나 죽음이 가져다 줄 엄청난 축복을 누릴 수 있다. 고통을 겪지 않고도……

용서하고 화해하고 난 뒤에 감사하며 죽을 수 있다면 가장 행복하고 성공한 사람이다. (노인강의)

 

가장 만족한 신앙은 ★★★

-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장차 나의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 이 고백의 찬양을 평소에도 부를 수 있고, 죽음이 임박해서도 진심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이상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노인강의)

 

하나님의 첫째 아들은 아담이고 둘째는 예수이다.

- 첫째는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교만의 죄를 지었고,

- 둘째는 죄를 지을 수 있음에도 죄짓지 않은 효자였다.

그리스도는 다 된 인간이고, 우리는 되어가는 그리스도이다. (신학자 칼 라너)

 

종교의근본 사명은 자신과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있다.

- 평생 신앙생활을 해도 자기와 세상을 변화시킨 경험이 없다면 죽은 신앙이다.

-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변화를 완성하지는 못한다.

- 그 변화는 죽음을 극복하는 믿음이 있기에 도덕이나 사회운동과 차원이 다르다.

- 우리는 늘 죽음을 의식하며 살기에 죽음은 삶의 일부라 할 수 있다.

우리 삶은 죽음으로부터 꾸어온 돈이며, 잠이 매일 지불하는 이자다. (쇼펜하우어)

 

부활신앙의 바른 이해

- 별로 의롭게 살지 않아도 예수만 믿었다고 천국에 가고

,- 자기 잘못도 아닌데 미 복음지역에 태어났다고 지옥이 간다.

- 이런 불공정한 내세관을 가지고 기독교는 2천년간 버텨왔다.

- 이제 이런 내세관은 과감히 폐기하거나 수정할 때가 되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선하시고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지옥에 입구 팻말 (단테의 신곡 지옥편’)

- 여기 들어오는 자는 희망을 가지지 말지어다.

중세인들이 무척 두려워 한 말이다.

 

지옥의 영벌이 존재한다면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

- 지은 악이 아무리 커도 영원한 벌을 받을만한 죄는 없을 것이다.

- 선이 개인의 공로만이 아니듯 악도 한 개인의 책임만은 아니다.

- 600만 유대인을 죽인 히틀러도 그것을 방조한 독일국민과 협조한 서방국가들이 있었다.

- 그렇다고 악인이나 선인이 똑 같은 사후에 처한다는 것은 인생과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