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신영복

스카이7 2023. 7. 6. 10:32

(2008년 7월 ) 통일혁명당에 가입한 적이 없다. 통혁당은 정식으로 결성되지도 않았다. 서울시당 준비모임이 꾸려져 있었다는 얘기를 나중에야 들었다. 나는 학생운동 차원에서 대학선배가 주도한 모임에 적극 참여했는데, 그 선배 삼촌이 북한에도 갔다 온 모양이었다. 당시 <청맥>이란 잡지에 진보적 소장학자들이 글을 많이 썼는데, 나도 거기에 참여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운동 차원이었다.

 

김질락 외에는 통혁당 지도간부인 김종태나 이문규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음에도(김종태, 김질락, 이문규 사형) 통혁당의 지도간부로 간주된 무기수 신영복이 이렇게 탄생했다. 그는 나중에 중앙정보부에 가서야 자신이 통혁당 지도부가 된 것을 알았다.

통일혁명당 기관지 <혁명전선> 내용 중에서 '김일성주의'
1983년 김정일이 '주체사상에 대하여' 문건 '김일성주의'언급

(2015년  <담론>)사형수가 됐을 때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햇볕 때문이었다

겨울 독방에서 만나는 햇볕은 (…) 길어야 두 시간이었고 가장 클 때가 신문지 크기였다. (…) 신문지 크기의 햇볕만으로도 세상에 태어난 것은 손해가 아니었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받지 못했을 선물이다.

그가 ‘살아가는 이유’는 깨달음과 공부였다. 공부는 살아가는 것 그 자체.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의 존재형식.
그것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키우는 성찰이며, 그것을 토대로 현실을 바꾸고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실천이다.

공부의 시작은 우리를 가두고 있는 완고한 인식들을 망치로 깨뜨리는 것. [ ‘깨달음- 깨져야(깨다) 시작할 수 있었고, 알 수 있었다(알음)]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이다. 그 끝은 가슴에서 발까지 가는 여행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 -  ‘중심’은 기존의 가치를 지키는 보루일 뿐, ‘변방’은 창조와 혁신의 공간. ‘하방연대’ 그것은 아주 구체적인 방법론.  우리 강의는 가슴의 공존과 관용(톨레랑스)을 넘어 변화와 탈주로 이어질 것이다. 존재로부터 관계로 나아가는 탈근대 담론에 관해 논의할 것이다. 이 관계는 <담론>의 핵심주제이며 만년의 화두.  관계를 통해 인식하고 관계를 통해 자신과 주변을 바꿈으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모든 존재는 고립된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관계 속에 놓여 있는 것이며, 그러한 관계 속에서 비로소 정체성을 갖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정체성이란 내부의 어떤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맺고 있는 관계를 적극적으로 조직함으로써 형성되는 것이다. 정체성은 본질적으로 객관적 존재가 아니라 생성이다. 관계의 조직은 존재를 생성으로 탄생시키는 창조적 실천이다.

<논어>의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
- 군자는 화목하되 부화뇌동하지 않으며, 소인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화목하지 못하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이 공자의 화동(和同) 담론에 대한 독특한 해석은 한반도 통일론에 적용. 
정치적 통일(統一)이 아니라 평화 정착과 교류협력을 통해 남과 북이 폭넓게 소통하고 함께 변화하는 화화(和化)로서의 통일(通一)이 돼야 한다. 이것은 한민족만의 과제가 아니라 “21세기의 문명사적 과제”이다.

이런 화동 개념과 연관시켜 톨레랑스(관용)의 한계도 지적한다. 
우리 서로 차이를 존중하고 공존하자는 톨레랑스는 근대사회 최고 수준의 가치지만, 그것이 자기 변화로 이어지지 않으면 ‘은폐된 패권논리’로 전락한다. 관용과 톨레랑스는 결국 타자를 바깥에 세워 두는 것이다. 타자가 언젠가 동화되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강자의 여유이기는 하지만 자기 변화로 이어지는 탈주와 노마디즘은 아니다.

가을에 나뭇가지 끝에 하나 남겨 둔 ‘씨 과일’을 가리키는 ‘석과불식’(碩果不食)에서 최고의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낸다. 씨 과일은 새봄의 새싹으로 돋아나고, 다시 자라서 나무가 되고, 이윽고 숲이 되는 장구한 세월을 보여준다. 한 알의 외로운 석과가 산야를 덮는 거대한 숲으로 나아가는 그림은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다. 역경을 희망으로 바꾸어내는 지혜이며 교훈이다. 나무가 뼈대를 드러내며 잎을 떨어뜨려 뿌리를 따뜻하게 덮는 이 석과불식의 요체는 사람을 키우는 일. 사람이 곧 뿌리.

우리 사회는 ‘불철저한 민주화’ ‘뿌리 깊고 완고한 보수적 구조’ ‘국제금융자본의 진입과 수탈’세 개념
인조반정 이후 지금까지 서인-노론으로 이어진 정치적 지배그룹의 교체가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권도 언론과 자본, 법조, 사회문화적 토대 등을 장악한 강력한 보수 권력집단으로부터 사실상 배제되고 소외당했다. 우리 사회 지배 엘리트 재생산 구조가 절대적으로 미국 의존적. 미국 위주의 신자유주의적 패권질서에 우리 사회가 올인하는 건 대단히 위험한 일.

“어쩌겠어요? 그렇게 비대칭적으로 자기를 강화하고 군림하는 집단은 다 자기 이유가 있는데. 그런데 그런 중심부 집단은 그게 또 약점이 돼요. 중심부는 변방의 자유로움과 창조성이 없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어요. 인류문명의 중심은 부단히 변방에서 변방으로 옮겨왔잖아요. 그런데 이런 역사적 변화는 그렇게 쉽게 진행되는 게 아니에요. 역사의 장기성과 굴곡성을 생각하면, 가시적 성과나 목표 달성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과정 자체를 아름답게, 자부심 있게, 그 자체를 즐거운 것으로 만드는 게 중요해요. 왜냐면 그래야 오래 버티니까. 작은 숲(공동체)을 많이 만들어서 서로 위로도 하고, 작은 약속도 하고, 그 ‘인간적인 과정’을 잘 관리하면서 가는 것!”

 

https://namu.wiki/w/통일혁명당%20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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