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시 민
《중앙일보》가 석 달 동안 연재한 ‘얼굴 있는 시인’의 산문 <박노해의 희망찾기>는 하나의 파격이었다. ‘좌익 무기수’ 출신에게 한 면을 통째로 내주고, 거기에다 임옥상 화백의 품격높은 그림까지 총천연색으로 곁들였으니. 그런데 월요일 아침 박노해의 글을 읽을 때마다 왠지 입맛이 씁쓸했다. 그러면서도 그 씁쓸함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딱 꼬집어낼 수 없었기 때문에 속이 더 불편했다. 그런데 열한 번째 산문 ‘오늘은 다르게’(7월 12일)를 보고서야 나는 몇 달 동안이나 머릿속을 맴돌던 의문을 풀었다. ‘박노해가 변절했다’거나 ‘박노해는 변함없는 빨갱이’라는 ‘수군거림’에 대한 그 자신의 대답이 열쇠였다.
“변화와 변절은 다른 것이다. 맛이 가더라도 썩어 변질된 맛과 잘 익어 승화된 맛은 전혀 다르다. 내가 변하지 않았다고 보는 눈과, 내 변화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눈. 이들은 사람과 세상을 진화 발전하는 과정으로 보지 않고 완결된 고정체로만 본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 자기 관점 이외에는 모두 틀렸다고 보는 절대유일의 잣대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서로 통한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15년 전 《노동의 새벽》을 읽고서 크게 감동을 받았던 사람으로서 그 감동은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1986년 이후 《노동자신문》과 《노동해방문학》에 실었던 수많은 ‘투쟁시’와 ‘時事詩’에서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박노해가 가졌던 사상에 반대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면서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글을 여러 차례 썼다. ‘나의 정치적 자유는 언제나 나의 政敵의 정치적 자유를 의미한다’는 진짜 자유주의자의 신조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회주의 혁명가 박노해’의 사상과 사노맹의 운동방식에 대해서는 손톱만큼의 공감대도 가진 적이 없다. 하지만 그가 이미 “나는 모든 주의자이며 아무 주의자도 아니다.”라고 고백했기 때문에 그의 사상을 비판할 필요는 없어진 지 오래다.
이 글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그리고 노선은 달랐지만 비슷한 사상적 방황을 겪은 사람으로서 ‘인간 박노해’에게 보내는 충고다. 혹시 주제넘은 짓이라고 할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충고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걱정과 연민 때문이다. 박노해의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묵은 상처를 덧들이는 쓰라림을 안겨 주었다. 그가 앞으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면서 살아갈지는 모르겠으나 박노해 자신의 삶에도 이미 작지 않은 상처를 남긴 셈이다. 나는 ‘희망찾기’에서 그 넓은 지면을 메꾸느라 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그리고 별로 할 필요가 없었던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의 모습에 안쓰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제 그에게 권하려 한다. 잠시 붓을 멈추고 남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시라고.
박노해는 자신이 긍정적으로 변화 발전한다고 주장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자기의 변신을 스스로 ‘승화’라고 예찬하는 태도가 특히 그렇다. 박노해가 변하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에 나는, 그의 논리대로라면 “한번 빨갱이는 영원한 빨갱이”라고 주장하는 공안검사들과 한 패가 된다. 그리고 “박노해가 변절했다고 수군거리는” 사람들과도 “닮은 꼴”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나는 박노해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믿는다는 점에서 공안검사들과는 견해를 달리한다. 사상적으로 볼 때 박노해는 자기 말마따나 “모든 주의자이며 아무 주의자도 아니다.” 하지만 이걸 사상적 “변절”이라고 비난할 정도로 철딱서니 없는 열혈 공산주의자를 나는 아직 본 일이 없다. 이 점에서 박노해는 무언가를 크게 오해하고 있다. 누군가 “변절”이라는 표현을 썼다면 그건 틀림없이 사상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간적인 서운함’ 또는 ‘배신감’을 토로한 것일 게다.
박노해는 말한다. “사람들은 내 얼굴이 변했다고들 한다. 그러나 나는 원래의 내 얼굴로 돌아왔을 뿐이다.” “엄혹한 독재정권 시절, 그 ‘짐승의 시간’을 ‘인간의 시간’으로 되살리기 위해 우리는 성난 얼굴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내가 인간의 얼굴을 되찾았다고 해서 욕하지 말고 늬네들도 정신 차리고 얼굴을 바꿔라, 그런 뜻이다. 하지만 박노해는 변하지 않았다. 성난 얼굴을 어느날 갑자기 웃는 얼굴로 바꾼다고 해서 사람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박노해는 우선 자기 자신이 “자기 관점 이외에는 모두 틀렸다고 보는 절대유일의 잣대만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겸손하게 웃으며 매스컴에 얼굴을 내밀지만 그는 자신이 “절대유일의 잣대”를 휘둘러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입혔던 과거를 지금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밝히지 않는다. 그러면서 지금 자기의 판단이 옳다는 말만을 되풀이한다.
준법서약서 문제가 불거졌을 때를 돌아보라. 나는 박노해의 석방을 진심으로 기뻐했으며 그가 준법서약을 했다고 해서 변절자라고 비난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끝내 서약을 거부하고 감옥에 남은 사람들과 이 제도를 변형된 전향제도라고 비판한 인권단체에 대해 박노해는 ‘유연하지 못하다’고 훈계했다. 조금 미안한 표정을 짓고 말았더라면 차라리 좋았을 것이다. 가수 심수봉의 입을 빌리면, ‘보내 주는 사람은 말이 없는데 떠나가는 남자가’ 큰소리치는 격이었기 때문이다. 박노해의 ‘적반하장’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자기 관점 외에는 모두 틀렸다고 보는 절대유일의 잣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박노해는 비장한 어조로 자신의 선택을 옹호한다. “극좌와 극우의 양쪽에서 날아오는 돌팔매에 몸을 드러내 놓기보다는 과거 이름의 영예를 지키며 조심조심 걸어가는 길이 얼마든지 있”는데도, “‘지조’와 ‘변절’의 양극단 사이에서 ‘바른 변화’의 길을 창조적으로 열어” 나가기 위해서 “울면서라도 앞서가”겠노라고. 경주 교도소에서 “참된 시작”을 한 박노해,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깃발을 들고서 극좌와 극우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바른 변화”의 길을 열어 가는 박노해.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는 자기가 추구하는 변화가 “바른 변화”라는 것을 논증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저 세상이 달라지고 있으니 우리도 달라져야 하며 자신의 변화가 ‘바른 변화’라고 주장할 뿐이다.
박노해는 사노맹 경력을 “과거 이름의 영예”로 간직하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나는 박노해라는 “이름”을 가진 시인에게 “영예”를 선사하는 사람은 수없이 많이 보았으되, 사노맹이라는 조직의 “이름”에서 그 어떤 “영예”를 떠올린다는 사람은 본 일이 없다. 인정하는 이가 별로 없는데 도대체 무슨 “영예”란 말인가. 박노해는 “감옥의 混居房혼거방 한쪽에서 갓 스물된 ‘새끼건달’들이 먹바늘로 살을 찔러 문신을 새기고 또 한쪽에서는 서른 살쯤 된 중간보스들이 벌겋게 생살을 벗기며 문신을 지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며 이렇게 개탄한다. “왜 문신을 지우는 선배들이 철없이 문신을 새기는 후배들에게 자신의 변화된 생각을 책임있게 말해 주지 못하는 걸까.”
사회주의 입문을 ‘문신 새기기’에, 그리고 사회주의 버리기를 ‘문신 벗기기’에 빗댄 이 비유의 적절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철없이 문신을 새기는 후배들을 말리는 데는 선배들의 “변화된 생각”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문신을 새김으로써 당하게 되는 고통과 불이익이 얼마나 큰지를 생생하게 이야기해 주는 편이 낫다. 마찬가지로 박노해가 자기의 “바른 변화”에 돌팔매질을 하는 ‘극좌 후배’들을 ‘교화’하려면 자기의 “변화된 생각”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사회주의 혁명가였던 시절에 자신이 했던 말과 썼던 글과 사노맹의 운동방식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걱정과 두려움과 상처를 주었는지를 낱낱이 고백하는 편이 훨씬 낫다. 하지만 그는 매우 추상적인 몇 개의 詩句말고는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박노해는 감옥문을 나서면서 세 가지 운동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첫째, “더 이상 지는 싸움은 하지 않겠다. 한꺼번에 성취하기보다는 착실하게 역량을 축적하는 운동”을 하겠단다. 그런데 이런 운동은 벌써부터 남들이 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전교조를 보라. 착실하게 역량을 축적해서 마침내 합법화를 쟁취하지 않았는가. 둘째, “돈이 되는 운동을 하겠다. 사람을 감동시키고 비전을 주고 사는 데 도움이 되는 운동에는 사람과 회비가 모일 수밖에 없”단다. 그런데 이것도 벌써 남들이 하고 있다. 참여연대나 환경운동연합, 동강을 살리려는 각종 시민단체들은 회비와 후원금을 제법 모으고 있다. 셋째, “즐거운 운동을 하겠다. 영혼이 맑고 건강한 사람들이 좋은 뜻을 모아 서로 연대하면서 보람과 재미를 나누는 운동이라면 어찌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것마저도 남들이 먼저 시작해 버렸다. 윤구병 선생 같은 분이 하는 생활공동체와 대안학교운동, 결식아동을 돕는 중국집 주방장들의 모임, 장애인을 돌보는 비장애인들의 모임은 수도 없이 많다. 박노해가 어디에 참여할지 두고 볼 일이다.
그가 어떤 운동원칙을 세우든 그건 자유다. 하지만 돈도 되고 재미도 있는 운동을 일찍부터 해온 사람들은 박노해와는 달리 지는 싸움을 하거나 돈이 안 되는 운동을 하거나 괴로운 마음으로 운동하는 사람들을 훈계하기보다는 자기 일에 열심이다. 지는 싸움, 돈 안 되는 운동을 누군들 좋아서 하겠는가? 처음에 지다가도 나중에 이기는 수가 있고, 돈이 안 모이다가도 갑자기 돈이 되기도 하고, 괴로워도 굳세게 하다 보면 볕이 드는 그런 운동이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도대체 무슨 “절대유일의 잣대”가 있기에 박노해는 이기는 싸움과 지는 싸움을, 돈 되는 운동과 안 되는 운동을, 괴로운 운동과 즐거운 운동을 그렇게 두부모 자르듯 구분할 수 있는지 나로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나는 또 박노해가 누구를 향해 ‘희망찾기’를 역설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혹시 ‘운동권’에 발가락 하나라도 걸치고 사는, 또는 걸쳤던 적이 있는 사람들을 향한 것이라면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예컨대 나는 별로 절망적인 상태에 있지 않다. 과거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 심지어는 사노맹과 《노동해방문학》에 참가했던 이들조차도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 고시도 보고, 아이도 낳고, 취직도 하고, 그렇게 “평화로운 저녁밥상”들을 차리면서 산다. 진보의 보폭이 그리 넓고 빠르지는 않아서 기운이 좀 빠지고 불만이 많지만, 그래도 세상이 조금씩은 나아져 가고 있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는다.
“사람만이 희망”이란 거,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다. 그 많은 젊은이들이 죽고 다치고 감옥에 가면서도 공장으로 농촌으로 숨어들고 유인물을 찍고 화염병을 만든 것이 다 그 “희망”인 “사람”을 일깨우고 조직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아직도 “문신을 지우”지 못한, 또는 “새로 문신을 새기는 후배들”을 걱정하는 마음이야 좋지만, 요새는 그런 사람 별로 없으니까 박시인이 그렇게까지 걱정하고 개탄할 필요가 없다.
‘운동권’과 무관한 보통 사람들을 향한 것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보통 사람들도 설교를 듣는 건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박노해의 발밑이 어쩐지 불안해 보인다. 허세와 거품의 징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는 경주교도소 독방 ‘感恩庵감은암’ 생활 7년 동안 무려 ‘1만 권의 책’을 읽었다고 자랑한다. 7년이면 약 2,500일이니까 하루도 빠짐없이 하루 네 권을 읽으면 1만 권을 읽을 수 있다. 취조와 재판을 받고 면회를 하고 편지를 쓰고 밥을 먹는 시간과 잠을 자는 시간을 빼고 넉넉히 계산해서 하루 열두 시간을 읽었다고 가정하면 한 권 읽는 데 평균 세 시간이다. 이게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읽은 책의 양을 밝히는 것 자체가 무척 우스운 일이지만, 1만 권이란 건 허풍이거나 대충대충 읽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그는 “책 속으로 걸어들어가 예수, 붓다, 간디, 마르크스, 체 게바라, 원효, 이순신, 다산, 추사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하니,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안타까운 일이다. 높은 데서 놀겠다는, 그런 의지랄까 욕심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그만한 ‘內攻내공’이 있다면야 기꺼이 거물 또는 도사님 대우를 하고 존경의 뜻을 보낼 의사가 있다. 하지만 그가 쓰는 글에서는 그런 깊이와 무게를 느낄 수가 없다. 너무나 딱한 예 한 가지만 들자. 박노해는 “문화혁명가 서태지”를 한껏 추켜세웠다. 그런데 자신이 세대의 벽을 뛰어넘는 문화감각을 가졌다는 걸 이렇게 표현한다. “20년 늦게 태어났으면 서태지가 되었을 것이다.” 이건 강준만 교수의 ‘웃자고 하는 자기자랑’과는 성격이 다르다. “20년 늦게 태어났으면 나도 서태지의 열성팬이 되었을 것”이라고 하면 좀 좋은가.
박노해 시인에게 간곡히 권한다. 당신이 쓴 ‘희망찾기’의 첫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꼼꼼히 되짚어 가면서 따져 보십시오. 거기 오직 박노해만이 할 수 있는 말이 도대체 얼마나 들어 있는지를. 희망을 가지라고 당신이 외친다고 해서 누가 희망을 얻을 수 있겠는지를. 텐안먼 시위를 유혈진압하고 중국식 개발독재를 수립한 덩샤오핑에 대한 일방적인 찬양과,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만델라와 음베키에 대한 서술이 누구를 감동시킬 수 있을지를. 나물 파는 할머니를 포함한 온 국민의 불신풍조에 대한 질타가 권력자의 도덕강의와 얼마나 다른지를. 금강산 안내원과의 대화기록에서 그 무슨 평화와 통일에의 희망을 찾을 수 있는지를….
나는 박노해 시인이 과장된 감수성과 빛나는 어휘, 힘찬 문장만으로는 남에게 ‘희망을 찾아 주는’ 감동적인 산문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 글을 ‘입에 쓴 좋은 약’으로 받아들여 주기를 바라면서, 다시 한 번 신체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되찾은 데 대한 뜨거운 축하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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