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수
중국은 공산주의로 바로 간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청 왕조를 없애기 위한 공화 혁명이 먼저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중국의 국부라고 불리는 쑨원 선생이 주도한 신해혁명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신해혁명에 우리나라 독립지사가 참여한 기록이 있었던 겁니다. 굉장히 놀랐어요. 한두 분 정도가 참여한 기록이 발견되는데 그 중 한 분이 신규식 선생님이에요.
중국 신해혁명을 일으킨 쑨원에게 그리고 러시아 혁명을 일으키는 데 큰 영향을 끼친 러시아의 문호 막심 고리키에게 공통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도 바로 프랑스 혁명이었습니다. 이러한 영향은 독립 후 새로운 나라를 꿈꾸는 우리 독립 운동지사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레닌이 10월 혁명 성공하자마자 법안으로 내놓은 게 <러시아 인민 권리 선언>이에요. 거기 보면 러시아 내 모든 민족이 독립 등의 권리를 요구하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실제로 핀란드는 그 선언에 의거해서 독립하게 되고요. 레닌은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나 패전국 가릴 것 없이 식민 지배를 받고 있는 민족들을 독립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레닌이 사회주의 러시아와 체제경쟁을 하는 다른 제국들, 특히 승전국들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이런 민족자결주의를 선언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이 있지만 독립을 요구하는 식민지국가들에게 얼마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열린 파리 강화 회의에서 민족자결주의를 본격적으로 이슈화시켰던 것은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었습니다. 미국은 러시아와 달리 승전국이었기에 그 당시 훨씬 입김이 셌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민족자결주의는 패전국의 식민지에만 해당되는 것으로 승전국에 포함된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의 문제는 논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러시아나 미국의 민족자결주의가 당시 상황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독립이 곧 정의라는 확실한 인식과 용기를 우리에게 준 것은 분명해 보이기에 두 가지 민족자결주의를 공히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민주공화제는 해방 이후, 단순하게 미국식 제도를 그대로 가져온 게 아닐까 생각했었어요. 그러나 취재를 해 나가면서 우리의 민주공화제가 훨씬 더 깊고 오래된 연원을 가지고 있고, 선조들의 깊은 고민과 많은 희생, 그리고 투쟁의 산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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