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도서요약_역사

스카이7 2023. 6. 25. 19:52

 

[불편한 한국사]

 신라 왕실은 선덕여왕, 진덕여왕 조에 두 갈래로 갈렸다. 첫째는 전통의 애니미 즘 즉 샤머니즘을 숭상하는 파이다. 둘째는 신흥 종교 불교를 숭 상하는 파이다. 이때 성(聖, 성인 성)이란 애니미즘, 샤머니즘을 숭 상하는 파를 나타내는 글자이다. 또한 진(眞, 참 진)이라는 글자는 당시 불교의 석가모니를 상징하는 글자이다. 즉, 중앙 집권화를 꾀하던 신라 왕실에서 진흥왕 이후,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을 거치 면서 참진 자를 쓰는 불교 숭상 세력들을 특별 대우해서 나눠 놓은 것이다.

재위 15년 만에 법흥왕은 불교를 신라의 지배 이념으로 택했 다. 그러고 나서 24대 진흥왕부터 진지왕, 진평왕, 선덕여왕, 28대 진덕여왕에 이르기까지 신라는 백제에 대한 한강 하구 지역을 배신하고 공격하고 차지할 정도로 중앙 집권화에 대한 집념이 무척 강했다. 불교를 국교로 하고, 이차돈을 목 베어 죽이면서 친위 쿠데타를 성공시키고, 왕실 세력을 불교로 단결시키고, 화랑과 낭도 제도를 100퍼센트 활용해서, 신흥 불교 세력이던 진골 세력을 한치의 오차 없이 단결시켰다. 애니미즘과 샤머니즘을 약 5대에 걸 쳐 극복하고, 단합된 힘으로 삼국 통일을 이뤄 낸 신라. 성골과 진골의 차이는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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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 시절에 백제와 신라를 쳐서 중원고구려비가 지금의 충청북도에 위치해 있을 정도로 강성했던 고구려가 한강 위쪽 고양시 일산 달을성현까지 내줬다는 것이다. 백제의 동성왕과 무령왕 이 얼마나 집요하게 백제 부흥을 꿈꾸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잃어버린 백제의 한강 유역 땅들을 차츰차츰 회복해 나갔다. 그러던 도중의 일이다. 안장왕이 태자 시절 일산 땅에 머물러 있었다는 이야기 말이다.

안장왕은 달을성현에 있을 때 신분을 완전히 속이고 백제의 중인 백성인 것처럼 살았다. 이곳에는 한씨 성을 가진 엄청난 절세 미인이 있었다. 전직 고을 귀족의 딸이었던 그녀는 안장왕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아버지 문자명왕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한씨 부인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 그리고 고구려에 돌아가 떳떳한 태자가 되어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한씨는 눈물로 안장왕을 떠나보내며, 자신은 절대로 변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제발 꼭 돌아오라고 간절히 바랐다.

한편, 한씨를 노리던 탐욕스러운 달을성현 태수는 한씨에게 자기의 침소에서 수청을 들라고 명한다. 그 명령은 당연히 거부된다. 여기서 나오는 게 그 유명한 <단심가>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향한 일편 단심이야 가실 줄 있으랴'라는 말.  태수의 생일날, 악단으로 변장한 안장왕과 그 호위 무사들은 태수가 거하게 취하자 변장을 풀고 태수를 죽인다. 그리고 한씨 부인을 데리고 고구려로 돌아가 안장왕에 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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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때 발간된  《수서》에 나오는 대로, 무려 라는 무려(武麗)라는 이름을 지닌 라(邏), 즉 국경의 요새를 말하는 것

수나라는 300만 명 이상 동원한 AD 612년의 대전쟁에서 무려라 하나를 빼앗아 가지고 돌아왔다.  이는 고구려로부터 석탄 화력을 빼앗 아 버림으로써 수나라 다음에 올 당나라와의 전투에서 결국 패망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고구려는 612년에 무려라를 빼앗긴 후, 56년 동안 무려 5번의 대전쟁을 겪은 후에 멸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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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후'라는 부족이 있다. 중국 운남성 일대에 49만 명, 미얀마에 15만 명, 태국에 10만 명, 라오스와 베트남에 1만 5,000명과 1만 명 정도가 살아가고 있다. 다 합쳐 봐야 약 80만 명이 되지 않는 소수 민족이다. 그런데 이 라후족은 그 옛날 고구려와 백제의 유 민.

고구려가 멸망한 후, 당나라의 포로로 끌려간 인원은 2만 8,000여 호에 달했다. 이들은 신라로 넘어간 사람들보다 훨씬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대부분은 왕실과 귀족 등 사회 상부의 사람들로서, 당나라는 이들로 하여금 특히 감숙성의 회랑지 역에 머물게 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후일 벌어진 안사의 난 때에 난리를 피해서 중국 운남성 지방으로 내려갔다고 보고 있다. 이들이 지금 라후족을 형성하고 있다고 보인다.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들 중 사회 상층부는 중국 정권에 조금도 기대어 살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해 끊임없이 왕조를 개 척하려고 했다. 중국 당나라도 이들과 발해와의 교통만큼은 막으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오히려 운남성 남쪽으로 집단을 대거 이주시켜, 부여계통으로 통합하려는 것 막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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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나라 입장에서도 고구려·백제 유민들은 골치 아픈 강력한 유민들이었다. 698년 발해라는 강력한 왕국이 새로 생기면서, 이들 고구려에서 당나라로 간 유민들은 늘 당나라의 정보망에 시달려야 했다. 
고선지의 서역 원정 역시 그렇 게 멀리까지,  '이번에 거기 가면 다 죽고 돌아오지 마' 했던 것이 당 현종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고선지는 탈라스 전투(751년 7월)에서 석국, 즉 현 우즈베키스탄의 항복한 군주를 죽이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에 아랍 전체가 고선지 장군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게 되면서, 전투의 기세 를 완전히 빼앗겼다. 결국 이 전투에서 사산조 페르시아가 고선지
의 당군(사실상 고구려·백제 유민 연합군)을 거의 전멸에 가깝게 물리 쳤다. 그리고 두환 등의 종이 기술자를 사로잡아, 그 유명한 바그다드 종이(←사마르칸트)를 제작하게 된다. 당시로서는 세계 최첨단 기술로 중국 당나라를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만들어 주었던 종이를 처음으로 서양세계에 전파시킨 공로가 있는 탈라스 전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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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녹산의난 9년간 3600만명 사망
 서역 강토에 고구려 부흥 운동을 전개했던 고선지 장군 역시 당나라 관군 편에서 안녹산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싸우다가  누명으로 처형당한다. 안녹산과 사사명의 난은 그렇게 당나라를 멸망으로 끌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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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몽고구려 2 대조영발해 3 이정기 제
 제(齊)  나라는 이정기에 의해 AD 765년 건국되어 그 아들 이납, 그 아들 이사고, 이사고의 동생 이사도에 이르기까지 4대를 이어 819년까 지 지속된 왕조이다. 이는 중국의 역사서 《구당서》와 《신당서》에 모두 기록된 내용이다. 엄연히 54년의 존속 기간이 전해지는 왕조였으며, 중국 수나라 양제의 최대 치적인 대운하의 가장 중요한 물류 구간을 54년 동안 장악하고, 안녹산과 사사명의 난 이후에 더욱 중요해진 대운하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던 왕조. 그것이 제 나라, 즉 제3의 고구려이다.
이 제나라의 원래 이름은 당나라의 치청, 다시 말해서 오늘날의 산둥성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소금생산  화폐의 지위. 또한 제나라는 지리적 위치상 당나라- 발해-통일신라를 삼각형으로 연결하는 중계 무역을 담당했다.  대운하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에서 해상 무역을 통해 발해와 통일신라로 나아가려고 해도 제나라를 거치지 않을 수 없었고, 거꾸로 발해와 통일신라에서도 거쳐서  당나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54년 간 세금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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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 : 905년에 옮긴 수도 철원은 그렇게 궁예의 철옹성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철원은 물 부족 도시였다.  쌀 가격 폭등

또한 전국의 조세(租稅)를 실어서 날라야 했는데, 철원은 한탄강 얕은 강줄기 .  모두 육로로 실어 날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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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 남원의 황산대첩  
임실 상이암(왕건도)  머뭄
진안 마이산 은수사 머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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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유학  13經
생애 BC 551~479년
분서갱유 
한무제의 유교 450년후 註疏 훈고학
재위 BC 141~87년

주자의 성리학 1300년후
생애 AD 1130~1200년

 조선은 공자이후 1800년후 유교 경전의 간소화(4서3경)와 미신 타파 그리고 불교적 교리까지 주소에 담은 제3의 유학인 주자 성리학을 선택하였고, 그것은 지금까지도(2500년후)  국가 근간 학문을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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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복위   순흥안씨(안중근 안창호)
수백명처형 죽계천 동천리 피끝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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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는 1755년 5월 이후로 영조와 사사건건 부딪혔다. 소론과 남인 500여 명을 죽이거나 노비로 만든 영조에게 그 아들은 "이게 아버지인가 짐승인가" 싶어 말을 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신분제는 무너지고 있고, 전체적으로 농업이 아닌 상공업이 대세인데,  농업 중심주의로 극단적으로 기울어 있을까. 노론은 노론대로 승명대리 사도세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금주령    사도세자는 이를 반대했다. 신분 제가 무너지고 있는 와중에 새로 상공업을 일으켜야 하는데, 이미 있는 상공업마저 흔들고 빼앗다니. 두 번째로 조선 팔도 각 마을별로 담론 공간을 없애 버렸다. 
10년 가까이 계속.  전통주명맥 끊어짐.
 정조 사후 그의 개혁 정치는 모조리 부정되었고, 다음 왕인 순조의 퇴행 정치 그리고 외척 신(新)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가 시작된다.♥
 
[이슈한국사]
반공포로 
작전통제권 무시
아이젠하워대통령 정면도전. 미 군사비3배 증가 종전필요성. ever ready 계획(제거)실행되지 못함.
이승만 정전협정반대 북진통일. 
정전후 상호방위조약 미국이 제안 
54년 한미합의 의사록에 따라 작전통제권 un사령관겸 미군사령관이 가짐.(X방위조약). 한국군원조도
환율전쟁 환율낮추어 더 많은 달러지원유도. 한미관계 안좋음(평온한 적이 없었다)
베트남전쟁 미국의재정파탄  69년 닉슨독트린 냉전체제 붕괴 (70후반~90초) 71년 달러 금태환금지.
64년 베트남파병 주한미군 감축막기 위해. 닉슨등장으로 감축됨. 파병이후 남북교전증가 북베트남 돕기위해. 68년 121사태 프..호사건. 한국무시 북한과 직접교섭. 한미 갈등심함.
이념 이상주의 ←→현실 실용주의.
오키나와 미군철수 닉슨중국방문. 중국의 북베트남지원 막기 위해(판단착오) 사이 실제론 안좋다.
GATT같은 개발도상국 특혜덕에 경제성장가능  현재 세계의 은행에 한국계는 없다. 관치금융. 금융통제.
금융부실. 부채폭탄. 재벌위주. 중소기업곤란 

 

 

[제국과 의로운 민족]  베스타 저

1888 미국인 데니  China & Korea 발표
청 영사 -> 조선 와아문 당상  조선은 조공국이면서 자주국.

중국의 일부가 되지 않음.   정체성과 지식 -   중국에 사신으로가서 많은 정보를 얻음. 책과 인적관계.
한국으로 오는 중국사신 철저히 통제 .

손문 일본에 호의적 
장개석도 일본에 호의적. 중일전쟁 발발하자 임시정부옹호. 국가로 인정하진 않음

해방후 중화민국 김구협박. 남북협상하면 볼일 없을 것. 1949 중공등장

우리는 너를 사랑한다 이 개자식아 -  아이젠하워

북한 - 문화 대혁명 부정적.
90년초 중국발전 - 한국의 투자및 기술에 크게의존 
2006 한한령 - 과도한 한국 치우침(문화)를 막고자함.

한중  - 형제의 나라 이끌어야 한다는 부채감.  가까워지자 북한은 배신감.

중 -  북한영향력 감소우려 
핵개발 - 곤혹스러운과제  소극적

 

[이순신의 바다]  황현필

난중일기, 칼의노래에 이순신의 전투에 관한 이야기가 있지만 어떤식으로 승리할수 있었는지가 설명되어 있진않다. 이책에서는 전투별로 전황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조선배는 포를 다수 설치하고(포병)  크고 회전이 잘되는 특징이 있다. 왜선은 작고 속도가 빠르며(보병위주) 빠르게 회전하지 못한다.  학익진은 포를 사용하기 좋은 배치이고 원거리에서 포사격을 하여 침몰시킨다. 왜군의 장점인 접근전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당시 해전은 가히 종합예술에 가깝다. 이순신은 배와 무기, 전투력 그리고 자연(밀물 썰물때, 기후, 해수면의 깊이등)에 대한 이해와 적군의 사기, 노젓는 사람의 피로도까지 고려하여 전투를 준비 하기 때문에 모든 전투에서 승리 할수 있었다. 특히 왜군이 패하여 육지로 올라왔을때 먹을것이 없는곳을 택(한산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다양한 자료뿐아니라 중국 일본의 자료도 포함하여 신뢰도를 높였다 . 또한 여러정황을 매우 간결하게 서술한 것이 좋았다. 이순신에 관한 책중 가장 읽을만 했다.
PS. 전쟁후 청나라가 세워지자 이순신과 함께 싸운 명나라장수 진린의 후손은 조선에 귀화하고 해남에 정착하여 현재에도 광동진씨로 살아가고 있다.

한산도에서 패한 와키자카는 서군이면서 도쿠가와의 동군편을 듬.
에도 막부이후 300년동안 '겸손한가문' 으로 유지. 10일간 미역만먹고 목숨부지. 7월8일(한산도 대첩)에는 미역먹는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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