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군사 안보

핵합의 과정

스카이7 2019. 5. 13. 19:34


북한 핵실험 일지


▲ 1985. 12. 12 = 북한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

▲ 1991. 12. 31 = 남북,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합의

▲ 1993. 3. 12 = 북한 NPT 탈퇴 선언

▲ 1994. 11. 1 = 북한 핵 활동 동결 선언

▲ 2002. 12. 12 = 북한 핵 동결 해제 발표   [2003-8 노무현정권]

▲ 2005. 2. 10 = 북한 핵무기 보유 선언

▲ 2005. 5. 11 = 북한 영변 5㎿ 원자로에서 폐연료봉 8천개 인출 발표

▲ 2005. 9. 19 = 6자회담서 '北 모든 핵무기와 현존 핵 계획 포기' 등 6개 항의 9·19 공동성명 채택

▲ 2006. 10. 9 =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제1차 핵실험 실시

▲ 2007. 2. 13 = 6자회담서 영변 원자로 폐쇄 및 불능화 합의

▲ 2007. 7. 15 = 영변 원자로 폐쇄

▲ 2007. 10. 3 = 6자회담서 모든 핵시설 불능화 및 핵 프로그램 신고 합의

▲ 2008. 6. 27 =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

▲ 2008. 9. 24 = 영변 원자로 봉인 해제

▲ 2009. 5. 25 = 북한 제2차 핵실험 실시

▲ 2009. 11. 3 = 북한 사용 후 폐연료봉 8천개 재처리 완료 선언

▲ 2013. 2. 12 = 북한 제3차 핵실험 실시

▲ 2013. 4. 2 = 영변 원자로 재가동 발표

▲ 2016. 1. 6 = 북한 제4차 핵실험, 조선중앙통신 "첫 수소탄 시험 성공적 진행" 발표

▲ 2016. 9. 9 = 북한 제5차 핵실험, 핵무기연구소 "새로 연구·제작한 핵탄두의 위력 판정을 위한 핵폭발 시험을 단행"

▲ 2017. 9. 3 = 북한 "김정은, 새로 제작한 대륙간탄도로켓(ICBM) 탄두부에 장착할 수소탄 참관" 보도

▲ 2017. 9. 3 =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인공지진 감지. 합참 "6차 핵실험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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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합의


90년대 중반, 북한의 핵실험 정보가 미 정보당국을 자극하는데, 딕 체니가 북한을 바라보는 관점은 단하나, '북한을 믿지마라' 였다. 클린턴 시절, 미국은 북한과 제네바합의(Agreed Framework)를 맺는다. 플루토늄 동결하고 IAEA사찰받고 경수로 지어준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합의였는데, 딕 체니를 비롯한 네오콘은 거세게 반대했다. 이란, 이라크, 북한 같은 무법자들(Rogue States)과 합의는 무의미하다며, 미사일 방어체제(MD)를 실행해 방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MD체제는 이라크전의 경험에서 나온 산물이었으나, 군산복합체의 로비의혹 탓에 보수진영에서조차 회의적이었다.


귀순한 태영호 前 공사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북한은 이라크를 털어버린 미국이 당장 치고 들어오지 못하게 할 시간이 필요했고, 클린턴은 북한이 곧 붕괴될테니 자연적으로 붕괴할 시간을 주자는 심산이었다며, 제네바 합의는 서로 다른 꿍꿍이를 갖고 벌인 사기극이라 했다.


그러다 98년 초, 북한이 미국에 대화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해 대포동 미사일을 쏘며 난리치자 2000년에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에 가서 미사일과 핵개발 관련 합의를 했다. 딕 체니는 제네바 합의같은 뜨뜻미지근한 약속에 회의적이었고, 부시 대통령은 연두 교서에서 '미사일 방어체제로 억제력을 강화한다'며 국방 정책 수정을 예고했다. '최선의 방어는 시기적절한 공격'이라는 딕 체니의 지론에 맞게 정책이 수립됐다. 무법자 국가들은 악의 축(Axis of Evils)으로 승격됐다. 당시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의 회고록 'No higher honor'를 보면, 북한에 더 강력한 제재를 가해 정권교체를 꾀하려 했던 얘기가 나온다.


이스라엘, 시리아, 북한 그리고 10월합의


現 국가 안보 수석인 존 볼턴은 저서 '항복은 선택이 아니다'에서, 북한은 악의 축이며 제네바 합의 내용인 핵사찰 약속도 지키지 않았고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까지 했으니 제네바 합의는 무의미하다고 봤다. 그러나 미국의 리버럴들은 양측 합의사항이었던 경수로 건설을 안해줬으니 미국의 위반이라 주장한다.어쨌거나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제임스 켈리 특사가 평양에 가서 북한의 합의 위반을 지적하자, 북한은 오히려 미국의 적대정책을 핑계삼아 우라늄 농축을 기정사실화 하고, 결국 2003년 제네바합의는 10년도 안되 종언을 맞는다. 그러자 반대급부로 미사일 방어체제, 즉 MD부서가 펜타곤에 공식적으로 생긴다. 네오콘의 염원이 실현된 것이다.


그런데 2005년에 부시 대통령이 강경한 대북 정책을 누그러뜨리는 대전환이 발생, 6자회담 형식으로 북한을 끌어내더니 2007년에 다시 합의를 보는데, 이른바 '10월 합의'였다.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빼줄테니 핵시설 동결과 사찰 받으라는 조건을 달았는데, 딕 체니는 거세게 반대했다. 이유로는, 2007년에 이스라엘이 시리아 핵시설을 폭격했는데, 바로 북한이 기술 지원을 해준 곳이었다. 딕 체니는 그 사실을 근거로 미-북 합의를 추진하던 콘돌리자 라이스와 크게 한판 붙는데 부시 대통령은 딕 체니의 손을 들어줬다. (딕 체니, 합의를 반대하다', 텔레그라프)


콘돌리자 라이스는 북핵의 재검증이라는 새로운 조건으로 대북 합의를 다시 시도했지만, 딕 체니는 사이비교 신도 취급했다. 그러다 2009년, 오바마 정권이 들어서자, 북한은 또다시 미국의 적대적 대북 정책을 구실로  10월 합의를 무효화 시킨다. 그렇게 10월합의도 무산됐다.


미국 리버럴들은 작금의 북핵위기는 강경 보수 매파때문이라 말한다. 합의한거 해줬으면 핵폐기와 한반도 평화가 왔을 거라는 얘기다. 매파들은 북한을 믿지 않는다  사실, 북한은 6.25때 휴전회담 과정에서도 하루아침에 합의를 뒤집곤 했고, 이후에도 크고 작은 도발과 정전협정 위반을 일삼아왔으며, 라면 공짜로 줬더니 금품까지 달라는  세세한 일화 까지 감안할때, 네오콘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긴 하다.


이스라엘은 시리아 핵시설 공장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자, 특수부대 새예렛 맷캘(Sayeret Matkal)을 보내 시설 근처의 흙까지 긁어와 분석했고, 북한 기술자들의 사진을 CIA에 갖다주기까지 했다. 이스라엘 총리, 모사드 그리고 딕 체니는 적극 대응을 주장했지만,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전에 대한 언론의 집중포화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고 주요 참모들이 반대하는 터라 추가 군사 작전을 승인하기 어려웠기에 결국  이스라엘은 단독 행동에 돌입  폭격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언론들은 딕 체니와 군산복합체가 한통속이었다고 맹비난을 했는데, 일단 네오콘의 시각에서 보면, 그 때 시리아의 핵 시설을 뿌리 뽑았기 때문에, 이후  시리아 내전상황에서 ISIS나 기타 무장세력에게 핵무기가 들어가는 걸 방지할 수 있었으므로, 이스라엘의 폭격은, 결과적으로, 중동이 최악의 상황으로 가지 않게 했던 결정적 행위 였다...고 볼 수 있다.


북한에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고, 미국 정계에서 김정은에 대한 낙관론이 나오자, 딕 체니는 여전히 강경했다. '웃기지들 마시라, 북한은 이성적인 집단이 아니다. 그들이 예측불가라는 점을 잊지말길.' (We simply can't assume that North Korea will behave rationally. The only predictable thing about North Korea is its unpredicta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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