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훈련과 신앙생활
권대원
교회에서는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을 좀 더 성숙한 신자, 예수님의 12제자와 같은 핵심적 교회 리더로 훈련하는 프로그램을 ‘제자훈련’이라고 한다. 명칭은 다양해서 ‘DTS’(Discipleship Training School)라고 불리기도 한다.
교회에서는 ‘제자훈련’이 교인들을 성숙하게 하는 필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서 지금도 많은 교회가 시행하고 있다. 대개 그런 제자훈련은 일반교인들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정교하고 빡빡한’ 훈련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런 ‘제자훈련’의 효과가 과연 성공적이라 평가할 수 있을까?
제자를 단기간에 길러내겠다는 철학의 위험성
일정시간 단위로 짜여져 있는 정교하고 빡빡한 제자훈련 프로그램 자체에 ‘인간이 일정 시간 안에 이런 프로그램을 주입하고 훈련시키면 그대로 변하거나 성숙될 수 있다’는 아주 순진하기 짝이없고 어쩌면 무섭기까지한 기계적 인간관이 녹아들어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은 그걸 아시기에 성경을 주의 깊게 보면 한 사람을 인도하실 때 평생을 걸쳐 여러 가지 인생의 여정을 통해 사람을 다듬어 가셨던 것을 읽어낼 수 있다. 결국 교회가 다양하고 정교해 보이는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단기간에 사람을 제자화 시키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가 어쩌면 하나님보다 더한 능력을 부릴 수 있다고 믿는 오만이 아닐까?
일상의 삶에서 제자로 살아가기, 그 지난한 과정
내 생각에는 차라리 지금보다 교회 프로그램이 훨씬 느슨해져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정말 교회가 본질적으로 해야만 하는 아주 기본적인 활동(바른 말씀 선포, 건강한 교리와 신학교육, ‘교인 사랑’이 아닌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교제와 나눔 등)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좀 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사람의 성장과 변화는 인생 전체에 걸친 과정’이라는 철학 하에 ‘교회생활에 대한 충성이 곧 신앙성장’이라는 성도들의 착각을 깨뜨려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좀 더 느슨하고 널널하나 분명한 철학을 갖고 그들이 일주일 삶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과 가정에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보내줄 수 있어야 한다.
삶으로 증명하기보다 제자훈련 이수로 증명하는 제자의 삶
단기 양육식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없애면 교인들한테도 인기가 없을 것이다. 교인들은 일상의 삶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는 죄책감과 부채감을 ‘단기간에 화끈하게’ 헌신하는 걸로 ‘탕감’ 받기를 원하니까. 교인들은 구구절절 설명해주지 않아도 삶 전체가 제자답게 변하는 것이 얼마나 큰 대가를 요구하고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기존 제자훈련의 약점을 극복할 대안은 무엇일까? 사실 기존의 제자훈련의 약점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결국 ‘신앙생활의 영역’을 ‘교회생활’로 축소시키며, 복음이 삶의 전 영역에 걸친 변화와 혁명을 가져온다는 통전적인 의미를 상실하고 내세 지향적 영혼구원의 문제로만 복음을 왜곡시킨 영향이 가장 크다 하겠다.
그리고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교회의 존재목적’이 건강한 신앙적 가치관을 가진 교인들을 ‘삶의 전 영역과 인생의 전 여정’에 걸쳐 얼마나 성숙하게 양성하느냐가 기준이 아니라 단기간에 교인수의 급격한 양적 증가가 곧 ‘교회다움의 과시요, 신앙적 승리’라는 잘못된 기준이 목회자들과 교인들의 의식에 팽배한 점 또한 큰 원인인 것 같다. 그래서 교회의 양적 팽창에 헌신적인 일군들을 얼마나 단기간에 길러낼 수 있는지가 ‘목적’이 된 제자훈련 코스가 남발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대안과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제자훈련’의 목적부터 다시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점검하며 깊이 사유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 중 중요한 개념들 몇 가지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신앙생활은 교회생활이 아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착각하는 것 중의 한가지는 ‘신앙생활’이 곧 ‘교회생활’ 즉, ‘교회에서의 봉사생활’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장로, 권사, 집사, 간사, 순장, 리더 할 것 없이 교회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가 곧 그 사람의 신앙적 성숙도와 직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당장 여러분 주위에 어떤 직분을 맡고 있는 교인이 있다면 일주일에 교회를 얼마나 자주 나가는지 물어보라. 장담하건대 최소3일이상 나가는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전부 그런 초인적인 의지를 발휘해서 일상의 삶도 충실하게 살아가야 하고 교회에서도 일주일 내내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렇게 신화화된 제자의 삶은 결국 삶의 일상성이 휘발되어 버리고, 교회에 맹목적으로 헌신된 극소수의 사람들의 그릇된 자부심만을 키워주며, 결국 세상에서의 소금과 빛이 아니라 교회 안의 ‘슈퍼 히어로’들만 양성되는 교회문화를 낳고 있다.
신앙생활은 교회생활이 아니다. 신앙생활은 삶의 모든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직장생활, 가정생활에 이르기까지 삶의 전 영역에서 ‘기독교인답게’사는 것이다. 이 당연하고 쉬운 진실을 기존의 ‘제자훈련’에 함몰된 사람들은 망각하고 있다. 그래서 기존의 제자훈련 코스가 ‘교회생활에 헌신된 일군을 길러내는 것’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었다면 새로운 대안적 제자훈련은 ‘교인들의 삶의 현장에서 기독교인답게 살아가는 것’에 포커스가 맞추어져야 한다.
제자 된 삶은 단기간이 아니라 인생에 걸친 여정이다
‘제자훈련’이라는 말 자체에 왠지 ‘단기간에 훈련 받는 코스’를 의미하는 뉘앙스가 남아 있는데, 여기에서부터 모순이 발생하는 것 같다. 제자로서의 삶은 단기간에 형성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대안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단기간의 훈련이 유효할 수 없는 이유는 신앙인들 각자가 처한 상황도 다르고, 회심 이후의 신앙기간도 다를 뿐더러, 설사 같은 수준의 신앙인들을 모아 놓았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배우는 속도가 각자 다르다는 사실에 있다.
그리고 전인적 교육, 수준에 맞는 교육, 도제식 교육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모델이 될 수 있는 신앙선배의 삶을 곁에서 배우는 ‘전인적 교육’과 ‘도제식 교육’이다. 즉, 삶의 현장에서 기독교인답게 살아가는 기독교인 선배들이 교회 내에 많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진행중인 제자훈련의 실제적인 삶의 모델을 누구로 상정하고 있는지 교인들에게 물어보라. 그럼 아마 대부분 그 모델은 제자훈련을 담당하는 목사거나 교회 내에서 존경하는 담임목사님 처럼 살고 싶다는 분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어떻게 일반교인(평신도)의 삶의 모델이 ‘목사’가 될 수 있나? 자기 삶의 99%를 ‘기독교인만 상대하는’ 종교 전문직인 목사가 어떻게 삶의 현장에서 99%는 비신앙인들과 부딪치며 살고 있는 일반교인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결국 이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순환논리에 빠지게 되는데 현장에서 제대로 기독교인답게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을 많이 길러내지 못하면, 교회 내의 제자훈련 또한 ‘교회일군 양성소’로 전락할 뿐 삶의 현장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교회 중심 주의’의 블랙홀을 벗어나 교인들을 ‘삶의 현장’으로 돌려보내야
그리고 교인들의 발길을 자꾸 교회로 향하게 하지 말고, 삶의 현장에 머무르며 일상적 삶의 영성을 회복하게 교회가 도와 주워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교회는 교인들이 그토록 하찮게 여기는 ‘세상’에서의 결핍과 초라한 모습을 위로해주고 보상해주기 위한 각종 프로그램과 직분의 잔치상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목사들은 교인들을 자꾸 교회로 불러내서 장악력을 높이며 충성도를 끌어올려서 교인수 증가와 교회 프로그램 운영위원으로 자꾸 활용하려 한다.
교회가 주중에 좀 교인들의 왕래가 적더라도 (기도하러 교회에 오는 것을 제외하면) 삶의 현장에서 고민하고 부딪치며 대안을 모색하고 연구모임을 만들며 최대한 삶의 현장에 머물도록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교회 만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과 행사들을 대폭 줄일 필요가 있다.
매 절기마다 있는 각종 전도, 선교 프로그램, 제자양육 프로그램, 훈련 프로그램~ 더 나아가 주일날 저녁예배까지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온전한 주일 성수가 아니라고까지 말하는 ‘폭력적 주일성수’에 이르기까지 일반 교인들을 교회 안에 묶어두는 각종 잘못된 관행과 프로그램을 대폭 수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교인들 또한 그런 풍성하다 못해 차고 넘치는 교회 프로그램 중독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원래 친한 교인들끼리 주일마다 만나서 밤늦게까지 같이 예배 드리며 각종 행사를 진행하면 묘한 쾌감과 기쁨, 중독성까지 있다. 그리고 마치 내가 그렇게 교회 일에 열심을 부리는 순간만큼은 나의 허접한 신앙이 뜨겁게 헌신하는 신앙으로 거듭난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당신의 신앙을 불태우고 증명할 곳은 교회가 아니라 당신이 속한 삶의 현장이다. 그러기 위해선 홀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성찰하며 점검하는 ‘고독의 시간’이 필수적이다.
‘진정한 안식일의 회복’과 고독의 미덕
온종일 예배 드리고 찬양 드리고 친한 교우들과 웃고 떠든다고 신앙이 자라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건 그냥 어쩌면 어릴 적 소꿉놀이와 같은 ‘교회놀이’에 빠져있는 것이다. 당신은 교회놀이에 빠져있는 ‘교회 안에서만의 제자’가 되고 싶은가? 삶의 현장에서 인정받는 진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싶은가? 진짜 신앙이 성장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다운 삶을 살려면 개인의 영혼과 마음을 단련하는 ‘광야의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메시아로서의 예수’가 아닌 ‘목수 예수’의 삶을 닮아가는 삶
더디고 힘들어도 일상의 삶에서 인격의 성장과 변화를 위한 정당한 대가를 치르며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참된 제자의 삶을 보는 것이 참 드물고 그리운 요즘이다. 진짜 예수님을 닮은 제자로서 살아가는 삶은 그만큼 길고도 힘든 과정이다. 그래서 제자는 언제나 소수였고, 앞으로도 소수일 것이다.
그러나 비록 숫자로는 적은 사람들일지라도 교회는 ‘교회일군 기르기가 제자’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참된 제자들을 길러내기 위해 온갖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 열매의 혜택을 자신의 교회가 직접 누릴 수 없을지라도 말이다.
한국 기독교가 진정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많은 기독교인이 짧고 굵게 3년 동안 공생애를 사신 ‘메시아 예수님’의 삶보다 30년 동안 목수로 살아가신 평범한 ‘목수 예수님’의 삶을 닮아가야 할지 모른다.